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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식탁] 엘비스 프레슬리의 소박한 미각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4. 21. 18:11

엘비스 프레슬리의 소박한 미각 



1953년 여름, 잘생긴 한 백인 청년이 미국 멤피스의 허름한 벽돌 건물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그곳은 4달러만 내면 누구나 개인 음반을 만들어주던 선 레코드 스튜디오였죠. 감미로운 목소리로 두 곡을 부른 청년은 돌아갔고, 강한 인상을 받은 스튜디오 직원은 그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고 "좋은 발라드 가수, 꼭 붙잡을 것"이라는 메모를 덧붙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20세기 미국, 아니 전세계 음악계를 뒤흔든 로큰롤 황제의 탄생 순간이었습니다.




Made in American Dream



    

길게 자른 구레나룻에 기름을 발라 매끄럽게 넘겨 올린 검은 머리, 내려 감긴 눈꺼풀 속의 눈빛은 촉촉하다 못해 농후합니다. 몸매가 드러나게 꽉 끼는 바지를 입은 남자가 "You ain't nothin 'but a hound dog~ Cryin' all the time!"(Hound Dog (1956))을 열창하며 격렬하게 춤을 추는 순간, 엄청난 함성과 열기가 폭발합니다.


팝 마니아가 아니어도, 할리우드 스타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언젠가 한 번쯤은 본 것 같고 또 본 적 있는 이 모습. 코카콜라, 미키마우스와 함께 미국의 대중문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키워드, <타임> 독자가 뽑은 20세기 최고의 인물, 오랫동안 미국의 상징이 되어온 엘비스 프레슬리는 일명 '엘비스 헤어'와 함께 개성 있는 의상, 몸동작 등 그만의 개성을 통해 세계적인 스타일 아이콘으로 많은 패션 피플들이 오마주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20세기 폴 포츠를 선행한 듯, 스타로서 그의 삶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한가지는 바로 드라마틱한 그의 성공 스토리입니다.



트럭을 몰던 평범한 백인 청년은 엄마에게 생일 선물을 하기 위해 4달러만 내면 음반을 만들어주던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합니다. 그리곤 우연히 경영자의 눈에 들어 하루아침에 전 세계를 사로잡는 스타가 됩니다. 눈빛부터 헤어, 의상, 목소리까지 그야말로 철철 넘치는 '섹시'와 자신만의 스타일로 무장하고 혜성처럼 등장한 20세기 아이돌, 그가 바로 엘비스 프레슬리였습니다. 



   

하지만 엘비스가 미국의 인기 TV 프로였던 '에드 설리반 쇼'에 출연했을 때, 스탠더드팝과 재즈 일색이던 주류 음악계는 점잖지 못하다는 이유로 그의 허리 윗부분만을 화면에 담았습니다. 가창력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폭발적인 매력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요.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과 자유를 갈망하던 10대에게 그는 우상이 되었고 전 세계 음악계에도 파격을 던졌습니다. 이제는 미국의 대표 문화가 된, 흑인영가와 컨트리송, 리듬앤블루스를 혼합한 스타일의 로큰롤이 그것이었죠. 엘비스의 로큰롤은 대중음악 시장에 10대 소비층을 양산해냈고, 당시 세계문화를 리드하던 미국 대중문화의 중심이 되었고 팝의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대중을 사로잡았던 그의 독특한 창법은 '흑인 목소리를 지닌 백인'이라는 별명과 함께 흑인 노래를 훔쳤다는 혹평으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어린 시절 감옥에 간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를 따라 블루스와 흑인영가가 넘치던 흑인들의 일터인 목화밭에서 자란 사연이 알려지며 오히려 슈퍼스타의 스토리는 감동적인 페이소스까지 품게 되었습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잘 알고 있듯 승승장구입니다. 최다 차트 앨범, 최다 톱 10 레코드, 최다 연속 톱 10, 24년 연속 차트 기록, 그래미 3차례 수상, 앨범 Blue Hawaii 20주 1위, 전 세계적으로 약 2억 5천만 장의 앨범 판매고 기록, 비틀즈 다음으로 많은 싱글 차트 1위곡 보유, 세계 최초의 위성 중계공연 (73년 호놀룰루) 등 그의 행적은 로큰롤 황제의 전설을 만들었고 평범한 트럭 운전사에서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된 인생 역전은 그야말로 '아메리칸 드림'의 결정판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정크푸드, 전설에 화룡점정을 찍다



가수로 성공하며 엘비스 프레슬리는 영화에도 출연하고 다양한 문화 상품의 아이콘으로 활약하면서 세기의 스타로 막대한 부와 영예를 얻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면에 인간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그 하나가 바로 입맛이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스타가 즐긴 음식은 무엇일까요? 희귀한 진미? 값비싼 음식? 하지만 그가 선택한 것은 한 변에 몇백 불, 몇천 불씩 하는 샴페인이 아닌 펩시 콜라 한 잔이었고, 어릴 적 소꿉친구가 구워줬던 파운드 케이크였습니다. 햄버거와 도넛도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가 즐겼던 땅콩크림바나나샌드위치는 식빵 한쪽에 땅콩버터와 바나나 썬 것을 얹고, 다른 한쪽에 버터와 꿀, 베이컨을 얹어 만든 것입니다. 엘비스는 아침으로 이 샌드위치 4개를 기본으로 먹었으며, 한 번은 이 샌드위치를 먹기 위해 19명의 친구와 전용 비행기로 테네시주에서 콜로라도주까지 날아가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이 땅콩크림버터바나나샌드위치는 '엘비스 샌드위치'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갖가지 정크 푸드 -Filckr_gruntzooki-)



또한 엘비스는 공연이 끝나면 무언가를 왕창 먹는 것을 좋아했는데, 특히 도넛을 즐겨 한 번에 12개씩 먹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한때는 고기 국물로 만든 소스를 얹은 돼지고기 요리를 하루 3파운드까지 먹었는가 하면, 달걀 6개로 만든 오믈렛이 베이컨 1파운드, 고구마 파이, 버터밀크 비스킷, 마시멜로에 초콜릿을 끼운 문파이 등을 모두 오직 한 끼 식사로 먹었으며 사탕, 아이스크림, 햄버거, 감자칩 등 아이들이 즐기는 음식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과하게 기름지고, 지나치게 달고, 엄청난 칼로리를 가진 정크푸드. 그가 폭식하듯 사랑했던 음식들이었습니다.



덕분에 한때 섹시함의 대명사였던 매끈한 몸매는 100kg 이상이 넘는 뚱보로 변했고, 생전 고혈압과 당뇨 등 각종 성인병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결국, 42세의 나이로 화장실에서 발견돼 세상을 등진 엘비스 프레슬리의 공식적인 사인도 부정맥이었습니다. 부검 결과 그의 위 속에서 발견된 음식은 아이스크림 네 국자와 초콜릿을 듬뿍 씌운 비스킷 여섯 개, 만성 변비를 앓고 있었고 진통제와 수면제 등 온갖 약물을 과다 복용하고 있던 터라 사인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지속 중이지만, 평소 지나치게 탐닉했던 그의 정크푸드 사랑은 틀림없이 독이 되었을 것입니다.



(닉슨 대통령과 엘비스 프레슬리 -출처 : 위키피디아-)


어찌 되었든 값싸고 서민적이었던, 평범해도 너무 평범한 햄버거와 콜라, 도넛이 부족할 것 없는 대 스타의 입맛을 사로잡은 진미였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이 엘비스 프레슬리야말로 가장 미국적이고 대중적인 스타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단서는 아닐까요?


만화 주인공과 제임스 딘을 흠모했던 엘비스. 그는 어떤 특전이나 특권도 거부했습니다. 인기의 정점에서 자발적으로 군대에 입대해 평범한 군인처럼 취사 당번과 보초를 섰습니다. 고급 차 전시장에서 신혼부부에게 서슴없이 자동차를 선물하는가 하면, 시골 촌부에게 타고 있던 차를 주고 자신의 옷을 칭찬하는 아이에게 그 자리에서 벗어줬다는 등의 미담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해마다 자선단체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는 한편, 태풍 피해자, 가난한 이들에게 지원해준 돈은 또 얼마인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라고 합니다. "그는 엔터네이너로서 뿐만 아니라 관대함과 친절함을 갖춘 '위대한 인도주의자(The Grate Humanitarian)'로서 세인들의 존경을 받았다"는 묘비명처럼, 이런 면이야말로 그가 정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여전히 미국의 상징으로 추앙받게 하는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가 사망했을 때 지미 커터 전 대통령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죽음으로 우리는 미국의 한 부분을 잃었다"고 추모했습니다. 비틀즈의 존 레논은 "엘비스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소박한 인간애를 잃지 않았던, 스타이기 이전에 마음 따뜻했던 한 사람. 그의 서민적인 입맛은 스타는 고급스러운 음식만 먹는다는 편견을 깨워주는 그의 재기 넘치는 드라마틱한 인생에 부여한 또 하나의 반전 키워드는 아니었을까요?



대중들의 사랑을 먹고 살았던 대중가수의 너무도 대중적이었던 입맛, 어느 비평가가 대중들이 엘비스에게서 찾았던 가장 큰 동질감은 바로 그 서민적인 식성이라고 평했듯, 그의 소박한 식탁은 평범한 한 인간의 기적 같은 아메리칸 드림을 더욱 견고하게 완성한 화룡점정인 것입니다.



 

 

참고 도서

 

[1] <엘비스, 끝나지 않은 전설> (피터 해리 브라운 지음, 이마고)

[2] <365일 팝 음악사> (정일서 지음, 돋을새김)

[3] <대가의 식탁을 탐하다> (박은주 지음, 미래인)

 

 

 

 

 

출처 : 웹진 Pioneer 133호(4월호) 천재의 식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