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꼭대기 미술관 <한솔뮤지엄>
안녕하세요? 아주캐피탈 공식 블로그 '아주 특별한 하루'입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겨울에 누릴 수 있는 특권 중 한 가지는 바로 '함께 눈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요? 수은주가 영하로 뚝 떨어진 겨울날, 점점 무거워지던 눈구름이 드디어 눈을 뿌렸는데요, 바쁜 일상을 반복하는 도시인들에게 나리는 눈은 성가시고 귀찮은 대상일 뿐.
하지만 사랑에 빠진 연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겨울 전령이 보낸 메시지에 절로 귀가 쫑긋해지고 특별한 의미를 찾게 되니까요. 서로에게 소중한 인연이 되어 특별한 만남을 시작한 아주아이티 황효찬 선임과 구미혜 씨도 겨울의 낭만을 더욱 짙게 느낄 수 있는 곳을 찾았어요. 바로 강원도 원주의 '한솔뮤지엄'이랍니다.
한솔뮤지엄이 다른 미술관과 가장 차별화되는 점은 바로 산 정상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에요. 이곳에 도착한 두 사람이 첫 번째로 마주한 것은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하늘과 청량한 바람, 그리고 또 하나. 구불구불 펼쳐진 능선과 설원 풍경이었어요.
“와, 이곳은 눈이 많이 쌓였네요!”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소복이 쌓인 눈길에 발 도장을 꾹꾹 찍었답니다.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즐거워하는 연인을 바라보자 영화 <러브 스토리>의 테마곡 ‘Snow Frolic’이 귓가에 맴도는 듯 했어요.
낯설게 소통하는 뮤지엄
<청조갤러리 전시실 내부>
원주시는 영서지방의 초입에 자리해 동쪽은 강원도 영월·평창, 서쪽은 경기도 양평·여주, 남쪽은 충청북도 충주·제천, 북쪽은 강원도 횡성 등 3개의 도와 접한 지리적 요충지이에요.
서울에서 2시간 여 달리면 도착해 비교적 가까우면서도 강원도 내륙의 수려한 경치도 함께 느낄 수 있어 짧은 여행지로도 적합하답니다. 치악산, 백운산 등 명산 외에도 사계절 즐길 수 있는 레저 시설, 문화 관광지 덕분에 이곳을 찾는 발걸음이 잇따르고 있어요.
작년 5월 문을 연 한솔뮤지엄은 국내 최대 전원형 문화예술 공간으로 손꼽히는 원주의 새로운 명소인데요, 산 위의 요새라고 해야 할까요? 해발 275m의 정상에 지어진 미술관은 서울 남산보다도 높답니다.
도심에 위치한 숱한 미술관들과 비교할 때 접근성과 효율성 면에서는 분명 거리가 있어요. 심지어 이곳을 관람하는 전체 동선도 그러한데요, 플라워가든, 워터가든, 스톤가든으로 이뤄진 3개의 야외 정원과 페이퍼갤러리, 청조갤러리로 나뉜 뮤지엄 본관을 둘러보는 데 관람 거리가 2.3km에 이른답니다.
이만하면 ‘미술관 순례’로 불러도 될 듯한데요, 하지만 이 부분은 한솔뮤지엄의 지향점과 연결된답니다. ‘소통을 위한 단절(Disconnect to Connect)’은 한솔뮤지엄의 슬로건이기 때문이에요.
이는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때론 단절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한데요, 익숙한 것들로부터 멀어질 때 문화 예술과 더욱 잘 통한다는 것, 느림과 쉼표로 마음의 여유를 찾게 하자는 것’이 그것이에요. 다행히도 두 사람은 특별한 ‘느림의 공간’에 곧장 적응했답니다.
“저희 성향이 정적인 편인데요. 평소에 차를 마시며 얘기하는 걸 좋아해요. 여느 커플처럼 식사하고, 차 마시는 평범한 데이트죠. 하지만 대화가 잘 통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즐거운 시간이에요. 저희와 이 미술관이 참 잘 맞는 것 같아요.”
대화가 잘 통한다는 건 연인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매력이에요. 그러나 어느 책 제목처럼 서로 다른 행성으로 상징되는 남녀의 소통에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어려운 지점이 있기도 해요.
또한 익숙하지 않은 순간들도 만나게 되겠죠. 내 기대와 다른 상대의 모습과 역으로 상대방이 해석하는 내 모습을 마주할 때 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낯설기만 할 거예요.
연인들에게 다툼이 끊이지 않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작용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천천히 나 자신과 상대방의 낯선 모습을 받아들이며 마음의 공간을 허락할 때라야 성숙한 사랑에 이르게 될 거예요.
아름다운 건축, 경이로운 작품
<백남준 작품 'Communication Tower'>
한솔뮤지엄으로 입장하는 웰컴센터를 지나면 야외 정원에서 두 개의 대형 조각품을 만나게 된답니다. 미국 작가 마크 디 수베로의 대형 설치작품 <제라드 먼리 홉킨스를 위하여 (For Gerard Manley Hopkins)>(1995)는 실제 바람결에 따라 움직이는 키네틱 조각이에요.
흡사 관람객들에게 반갑다며 손을 흔드는 것 같기도 하답니다. 자작나무 길을 지나 코너를 돌면 정면에 알렉산더 리버만의 <아치형 입구 (Archway)>(1998)가 기다리고 있는데요, 타원형, 파이프 등 금속 조각들이 리드미컬하게 연결된 조각물에는 군데군데 눈이 쌓이고 고드름까지 열렸답니다. 자신의 자리인양 풍화되며 자연과 하나 되어 가고 있어요.
<페이퍼갤러리 내 한지 제작 과정을 설명하는 모형 작품>
뮤지엄 본관에 이르러 본격적인 작품 관람을 이어갔어요. 출발은 페이퍼갤러리였는데요, 총 4개관으로 나뉘어 각각 종이(紙), 가지다(持), 뜻(志), 이르다(至)는 주제로 꾸며졌답니다. 종이의 탄생부터 역사와 의미를 전달하고 수준 높은 종이 공예품, 각종 문화재들이 진열돼 있었어요.
“이게 정말 종이로 만든 거라고요?”
미혜 씨의 눈이 동그래지고, 효찬 씨도 입이 딱 벌어졌어요.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을 만큼 훌륭한 전통 종이 공예품들은 색감이며 만듦새가 뛰어나답니다.
네 번째 전시실에서 진행된 미디어 아트 체험은 독특한 경험이었어요. 독일의 설치예술가 ‘ART+COM’의 작품 ‘The Breeze’는 두 사람이 들고 있는 흰색 종이 위에 마치 먹물 방울을 떨어뜨리듯 빔을 쏘는데요, 곧 용비어천가 한 구절의 단어로 형상을 바꾸는데 글자를 이동시켜 주고받기도 한답니다.
천천히 동선을 따라 이동하니 곧 독특한 건물 구조가 눈에 들어왔어요. 한 갤러리에서 다음 갤러리로 이동하려면 건물 둘레를 빙빙 돌게 되는데요, 자연 채광이 깊숙이 들어오는 긴 복도, 사선으로 꺾이는 코너, 깔끔한 노출 콘크리트 벽, 전면 유리창은 바로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즐겨 사용하는 기법이랍니다.
이곳에서 서두르는 관람객은 쉽게 지치고 말겠죠? 느린 발걸음으로 천천히 사유하며 감정을 이완하면 어느새 무뎌진 감각이 깨어난답니다. 유리창 앞에서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던 미혜 씨는
“서울에서 가끔 미술관에 가곤 했는데 이런 곳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전시된 작품들도 멋있지만 저는 이 건물 자체가 무척 멋져요. 배치, 구도 구성 모두 그렇고 편안한 느낌을 주거든요”라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어요.
페이퍼갤러리 관람을 마치고 청조갤러리에서 20세기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회화 작품들과 판화, 조각, 드로잉 작품들을 만났어요.
특히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이쾌대, 백남준 등 우리나라 근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들의 작품 100여 점을 한 데서 볼 수 있다는 건 여느 미술관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답니다. 이 작품들은 전부 한솔그룹 이인희 고문이 40년간 수집해온 작품들을 기증한 것이라고 해요. 황효찬 씨도 관람 소감을 밝혔답니다.
“김창렬 작가의 물방울 작품이 인상적이었어요. 또 눈에 익은 이중섭 작품이 반가웠고요. 다 해석되지 않아도 마음에 남았습니다.”
한솔 뮤지엄에는 이외에도 제임스터렐관이 있어요. 두 사람이 방문한 때에는 마침 작품 보수 관계로 문을 열지 못했지만 놓치기 아까운 전시랍니다. 빛과 공간의 예술가로 불리우는 제임스터렐의 작품은 관람객들이 인지하지 못했던 빛의 아름다움과 하늘 위 구름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공간을 구현해 관람객들에게 명상의 공간을 제공해요.
겨울 여행은 설렘이다
관람을 마친 오후, 두 사람을 축복하듯 하늘에선 또 다시 눈이 흩날렸어요. 첫눈이 오던 날에는 문자 메시지만 주고받았는데 오늘 여행에서 비로소 함께 눈을 맞아본다고 해요.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눈이었어요. 눈송이들이 대지에 하얗게 내려앉고 연인의 마음까지 포근하게 덮어주었답니다.
“오늘 여행을 준비하며 교통편과 일정을 체크하는 모든 과정이 설레고 즐거웠어요. 일상의 터전이었던 빌딩숲과 아파트숲을 떠나 드넓은 자연을 마주한 것도 감동적이고요. 이 여정이 행복합니다.”
겨울 여행이 낭만적인 건 여행의 주인공인 선남선녀 때문이 아닐까요? 화려한 꽃도, 싱그러운 신록도, 탐스런 과실도 없는 쓸쓸한 계절에 그들은 서로를 통해 여백을 채웠답니다. 더욱이 마음을 두드리는 예술 작품을 함께 바라보며 그 울림에 귀 기울인 두 사람. 서로에게 향하는 발걸음이 크고 진지한 듯 하네요.
출처 : 사외보 아주좋은날 2014.01+02월호
<NATURE & ART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특별한 여행 이야기>
글 : 주정하
사진 : 안홍범・한솔뮤지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