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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것은 왜 모두 뒤에 있을까?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12. 16. 10:58


  소중한 것은 왜 모두 뒤에 있을까?

 

소중한 것은 왜 뒤에 있을까?




사랑스런 딸에게 줄 선물을 뒤에 감춘 아빠. 근사하게 턱시도를 입은 신사의 등 뒤로 돌린 손에도 연인에게 줄 선물이 들렸습니다. 로맨스 그레이의 낭만을 북돋워줄 깜짝 꽃다발 역시 숨긴 곳은 등 뒤. 이것은 다름 아닌 모 휴대폰 광고 속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 카피, "소중한 것은 모두 뒤에 있습니다"가 강렬하게 화면을 뚫고 지나가는 순간, 번쩍 깨달음이 스칩니다. 그러게, 소중한 것은 왜 뒤에 있을까요?




앞과 달리 뭘 좀 가진 뒤


일찍이 우리 조상들이 된장, 고추장, 간장 등 한해 밥상을 책임질 귀한 장들을 모셔둔 것 역시 앞뜰이 아닌 '뒤'뜰이었으며, 회장님들이 선택하는 곳 또한 다름 아닌 자동차 '뒷'자석입니다. 무언가를 넣으면 볼록하게 내용물의 정체나 부피가 적당히 짐작되는 앞 주머니와 달리 소중한 비상금도 뒷주머니에 찹니다. 시야에서 감춰지는 까닭에 눈에 보이는 위험으로부터 소중한 것을 숨기고 보호해 지킬 수 있는 안전한 장소, 그게 바로 우리가 뒤를 선택하는 이유입니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속담에선 '뒤'라는 말에 선험적 의미를 담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혼해 자식을 두고 난 뒤에야 부모 마음을 이해하고, 실패해 본 뒤에야 성공이 더 절실해지며, 아프고 난 뒤에야 건강이 더욱 소중해진다도 같은 맥락입니다.

 

앞모습 보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야말로 진짜 미인이고, 누군가의 뒤에 선 사람은 그 어떤 것보다 든든함을 발휘하는 것 또한 뒤가 가진 힘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과 달리 의외의 반전 매력을 가진 게 뒤입니다.  앞만 보고 달리던 우리에게 그 한 마디. "소중한 것은 모두 뒤에 있다"라는 카피가 뒤에 숨겨진 신선한 매력에 눈뜨게 한 셈입니다.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느낌 아니까

 

한 설문조사에서 직장인들 80%이상이 경험하며 이미 직장문화의 하나로 자리잡은 지 오래라는 뒷담화. 사실 휴게실이나 술자리, 사내 메신저 등 한 명이 자리만 비워도 시작되는 게 바로 이 뒷말입니다.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프리츠 하이더는 뒷담화가 계속되는 이유로 비밀을 공유해 서로 믿을 만한 특별한 사이라는 느낌을 받게 하고, 이로써 우리는 한 편이라는 동질감, 친밀감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뒷담화의 화제란 사적인 데다 정확도도 떨어지는 게 대부분.보통 '흉'인 만큼 나쁜 소문을 키워내는 진원지가 되어 정정당당히 상대방 앞에서 할 말 하는 앞 말과 달리 의사소통 수단으로서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말의 부끄러운 이면입니다. 믿는 사람에게 무방비하게 맞는 뒤통수도 몇 배 더 아프고, 어둑신한 뒷골목 역시 어둡고 음침해 선뜻 발길을 두기가 어렵습니다. 보이지 않는 뒤편이 공포스럽고, 냉정하게 돌아선 뒷모습이 자주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이렇게 공격 당하기 쉬운 허점, 혹은 약점 포인트, 나쁘고 불길하고 불안한 게 어쩌면 뒤의 본래 속성입니다. 이쯤 되니 슬슬 혼란스럽습니다. 가만 보니 뒷이야기가 앞과는 영 다르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뒤의 진실. 백문이 불여일견, 눈으로 확인 가능한 앞과 달리 정확한 예측이 어렵고 짐작이 많아 감정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게 바로 뒤이기 때문입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평소 이런 뒤의 면모를 머리 깊이 입력해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앞이 아닌 이런 뒤에 소중한 선물, 금쪽같은 비상금을 숨기고 어려운 상황에서 희망을 몰래 품고, 뒤를 퇴로로 선택하고 있습니다.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은가요?

 



마침표 없는 뫼비우스의 고리, 앞뒤는 생각하기 나름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숨기는 까닭에 뒷주머니는 종종 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뻔한 살림에 예기치 않게 등장하는 각종 대소사를 책임지는 기특한 비상금이기도 합니다. 뒷담화 또한 개인의 선행에 대한 이야기는 10%에 불과하지만, 그 속내에는 공동체 안에서 해야 할 일과 의무가 담긴, 재미와 교훈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효과적인 프로그램 입니다. 사람 발길 한적한 뒷골목은 위험해 보이기도 하지만, 소박한 일상이 묻어나고 전통과 추억이 살아 숨쉬는 정겨운 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로 돌아선 등은 몹시 시리지만, 그 등을 두드려주는 손은 어떤 위로보다 따뜻합니다. 모 보험사 광고가 앞도 아니고, 옆도 아니고 뒤에 서 있겠다고 하는 것도 이런 의미가 아닐까요?


처가와 함게 멀리 둘수록 좋다는 화장실 역시 냄새 고약한 지저분한 장소지만 사색의 여유가 있고, 불편한 속을 말끔히 비워주는 해우소입니다. 어둡고 위험하고 불길한 줄만 알았던 뒤를 뒤집어보니 비밀스런 정성과 안전과 의외의 훈훈함이 가득합니다. 



이처럼 뒤에는 은근한 이중성이 담겼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소중한 것을 기꺼이 뒤에 맡기는 사연 아닌가요, 비단 뒤만 그럴까요? 중국에서는 숫자 8의 발음 '빠'가 재산을 모은다는 뜻을 가진 '차빠이(發財)'의 '빠(發)'와 같다는 이유로 행운의 숫자로 여깁니다. 반면 베트남에선 수갑처럼 생겼다는 이유로 8을 아주 싫어합니다. 불가능이란 뜻의 'Impossible'이라는 단어에 땀 한 방울 흘리면 I'm possible'이 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모든 사물에 앞과 뒤가 있지만 사물을 구별하고 세상을 읽는 방식일 뿐 둘이 다르다는 생각은 무작정 '뒤'에 불편부당한 시선을 꽂는 우리의 편견, 고정관념과 같습니다. 


12월 역시 한 해의 끝과 같지만 다시 보면 새로운 시작입니다. 앞서가는 시간에 늘 쫓겨 살지만 잠시 뒤의 시간도 필요한 법입니다. 반성하고 후회하고 정리하고 그렇지 않아도 생각할 게 많은 계절이지만, 말랑말랑하게 생각을 깨워봅시다. 뒤에도 우리의 소중한 것들이 참 많은 것처럼 말입니다.



출처 : 웹진 PIONEER 129호 (12월호) W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