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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힐링'을 너머 '함께 축제'의 공간으로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12. 12. 11:39

 

 '홀로 힐링'을 너머 '함께 축제'의 공간으로



안녕하세요? 아주캐피탈 공식 블로그 '아주 특별한 하루'입니다.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자기치유'라는 단어가 지나치게 남발되는 요즘, 따로 힐링하지 말고 함께 잘 놀아보는 건 어떨까요. 점점 개별화되는 이 시대에 잘 어울려 노는 도시 문화 공동체를 어떻게 창조할 수 있을지, 세계의 복합문화공간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겠습니다.

 


두 주일간의 야근이 이어지다 갑작스레 여유 있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애초에 계획된 일이 없으니, 이게 참 당황스럽습니다. 친구들에게 카톡을 돌려보니, 학원에 간다느니 초상집에 간다느니 데이트가 잡혔다느니... 참 다들 바쁩니다.

 

이럴 때 여러분은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가서 흥행영화나 한 편 볼까요? 동네 선술집에 가서 안주로 저녁 삼아 한잔할까요? 일단 홍대 앞에 가서 아무 공연이나 볼까요? 이도 저도 귀찮으면 대형마트에 가서 카트나 채워볼까요? 뭐든 괜찮지만, 또 어쩐지 쓸쓸합니다. 도시의 삶이란 게 다 이런 걸까요?

 

저는 페이스북에 연결된 외국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너는 갑자기 시간이 생겼을 때 어디로 가?" "글쎄? 다른 날은 모르겠고, 오늘은 탱고 파티를 위해 맥주 양조장으로 갈 거야." "나는 무조건 동네에 있는 장례식장에 가. 오늘은 무료 요가 교실이 있어." "스케치북 하나 들고 부둣가에 있는 은행 건물로 갈 거야. 언제든 같이 그림 그리고 놀 친구들이 있거든." 친구의 말이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일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 상황이 우리 주변에서 요즘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입니다. 세계의 도시들이 앞다퉈 죽은 건물을 되살려내고 있습니다.

 

 




아카렌가 소코와 뱅크 아트 1929

어떤 도시를 자주 찾다 보면 점점 자신의 동심원이 커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저의 경우에는 도쿄가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시부야나 하라주쿠의 화려한 패션이 좋았습니다. 그 다음엔 지유가오카, 다이칸야마의 쾌적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한 가게들에 반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요코하마의 바닷가로 달려갑니다. 이곳 부두는 그 자체가 거대한 문화 놀이터입니다. 예술적인 곡선으로 이루어진 야외의 산책로, 곳곳에서 벌어지는 아마추어 뮤지션들의 거리 연주, 가끔은 초대형의 천막을 쳐놓고 머슬 뮤지컬 같은 대형 공연을 하기도 합니다.

 

거기에 두 개의 프로젝트가 이 곳의 매력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하나는 아카렌가 소코. 항구에 있던 붉은 벽돌 창고를 현대적인 공간으로 재창조해, 세련된 쇼핑몰들 사이에서 전시와 공연을 즐길 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또 하나는 뱅크 아트 1929. 1929년에 세워진 두 개의 은행 건물과 우편 연락선의 창고를 개조한 곳인데, 2005년 도쿄예술대학을 필두로 해서 다양한 아트 스튜디오, 갤러리, 서점 등의 시설을 들여왔습니다. 보통 예술가들이 잔뜩 들어와 있는 곳은 뭔가 허세를 떠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곳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시민들의 자유로운 참여를 위해 가능한 많은 장소를 개방하고 있고, 특별히 작품을 감상한다기보다는 예술가 친구의 집에 놀러 온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오래된 건물을 문화공간으로 만드는 것은 단순히 비어 있는 건물을 재활용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며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는 주민들이 하나의 공동체라는 걸 깨닫게 해줍니다.

 

 




쿨투어 브라우어라이

낡은 건물을 되살리는 일에 독일인들을 빠뜨릴 수 있을까요? 특히 베를린은 동서 냉전의 한복판에서 여러 역사적 유물을 간직하게 된 덕분에 도시 곳곳에 정체불명의 문화공간을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쿨투어 브라우어라이는 문자 그대로 '문화의 양조장'입니다. 1842년에 처음 문을 연 대규모의 맥주 양조장이었는데, 2차대전 이후 몰락하면서 전쟁 포로들의 노역 장소로 이용되기까지 했습니다. 이곳에 문화의 싹이 움튼 것은 동독이 지배하던 1974년으로 자유를 외치던 예술가들이 프란츠 클럽을 만들어 다양한 공연을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그리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에 문화 예술인들이 이 곳을 점거하면서 문화의 해방구 같은 장소가 됩니다. 이곳은 정부나 지자체의 재정 지원을 받는 순수한 예술 공간이 아닙니다. 여러 상업, 사무 시설을 함께 두어 경제적 자립을 유지하면서 열린 문화 프로그램을 만들어갑니다. 라이브 클럽, 악기 상점, 디자인 전시관, 독창적인 아트숍이 각자의 노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구 동독의 낙후된 지역에 문화적 터전을 만들자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주변 지역까지 밝은 분위기로 변모했습니다. 동네 주민들은 그저 장을 보다가 카페에 들러 작은 공연을 관람하거나, 그곳 벽에 붙어 있는 전단을 보고 수업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쿤스트하우스

오스트리아 연방 자치주 스타이에르마르크의 주도인 그라츠는 오스트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서 중세 이후부터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안정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오랜 역사는 그만큼의 그림자를 간직하게 마련인 것 같습니다. 이웃한 동구권 국가들에서 이탈한 많은 빈곤층 난민들이 이 도시로 모여들었습니다.

 

난민들은 무어 강의 서쪽에 밀집 정착하게 되었고, 이는 강 동쪽 올드 시티와 문화적 단절을 초래했습니다. 그리하여 시 정부는 2004년 문화 단절의 벽을 허물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쿤스트하우스를 지었습니다. 영국의 건축가 피터와 콜린이 설계한 4층짜리 복합문화공간인 쿤스트하우스는 외관부터가 자극적입니다.

 

문어의 빨판처럼 촉수를 내민, 짙은 청색의 아크릴 지붕이 마치 외계 우주선 같은 인상을 줍니다. 과거 콜린이 '온통 붉은 벽돌색 지붕 천지인 주위 환경의 건축양식이나 형태, 재질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외계인 같은 건물을 짓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혔는데요, 그 파격적 외관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보여집니다.

 

쿤스트하우스는 햇빛이 내리쬐는 낮에는 주변의 건물과 거리를 아크릴 외장의 전방위에 되비치고, 밤이 되면 컴퓨터 프로그램화된 900개 이상의 네온 불빛으로 무늬를 만들어냅니다. 쿤스트하우스의 파격적인 외관이 지니는 의미는 이해와 화합을 위한 편견 부수기입니다.

 

따로 소장품을 두지 않은 채로 다양한 현대 미술의 자유로운 실험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이 미술관은 프레젠테이션, 세미나, 워크숍, 기자 회견, 영화 상영 등을 위한 부대시설까지 갖추고 있는, 모든 이에게 열린 놀이공간입니다.

 

곳곳에서 다양한 연령대 학생들의 현장 수업이 큐레이터의 안내에 따라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벤트가 마련되어 있고 누구든지 찾아와 나름대로 학습과 놀이를 즐기는 모습에서 애초의 건립 취지가 빛을 발하는 듯합니다.

 

 




문화역 서울 284

이런 즐거움을 바다 밖의 도시에서만 즐길 수 있냐구요? 아닙니다. 요즘 저는 서울역을 자주 찾습니다. 지방 강의나 여행때문만은 아닙니다. 1920년대에 지어진 구서울역사가 산뜻한 모습으로 보수된 뒤 '문화역 서울 284'로 문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이 곳은 단순히 옛 서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문화재의 역할만 하는 게 아닙니다. '여가의 새 발견' '타이포 잔치' 등 알짜배기 전시와 공연이 꾸준히 벌어지고 있는데, 시민들이 단순히 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함께 창작하고 즐길 수 있는 이벤트를 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봄에는 저 역시 동호회 친구들과 함께 '스윙 스테이션' '블루스 스테이션'이라는 소셜 댄스 행사를 만들어 강습, 공연, 파티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주변의 시민들이 처음에는 수줍은 듯 구경하다가 서서히 춤판에 끼어듭니다.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은 사람을 만듭니다. 시민들 각자가 일주일에 한 번 작가, 뮤지션, 댄서가 될 수 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그 분들의 삶 자체에 그 예술의 창의성을 깃들게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장을 보고 술을 마시고 친구와 수다 떠는 일상의 행위 자체가 문화로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을 수 있고, 즐거운 창조의 분위기 속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지구촌 곳곳에서는 버려진 채, 허물어져 가던 건물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어, 도시를 움직이는 새로운 심장이 되고 있습니다.

 

 

 

 

 

 

 

 

출처 : 사외보 아주좋은날 11+12월호 'VARIETY STORY 너와 나의 경계를 넘는 세게의 복합문화공간

 

이명석은 <이매진>, <스폰지> 등의 매체에서 기자와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현재 엔터테인먼트와 인문학의 경계에 서서 다양한 테마를 새롭게 다루는 문화 비평가로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 [지도는 지구보다 크다], [도시수집가], [논다는 것], [유쾌한 일본만화 편력], [모든 요일의 카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