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의 식탁] 오노레 드 발자크 "커피에 죽고 커피에 살다"
오노레 드 발자크 "커피에 죽고 커피에 살다"
뜨거운 창작 동력이거나 혹은 고독한 삶의 구원이거나
나폴레옹, 작곡가 베토벤, 화가 고흐, 철학자 칸트, 교황 클레멘트 8세……. 국적도, 활동 분야도 달랐던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세계를 풍미했던 천재 혹은 희대의 귀인 거기에 한 가지가 더 있다면 다름아닌 커피입니다. 하지만 커피를 말할 때 이들만을 이야기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무덤에서 일어날 사람이 있으니 커피에 죽고 커피에 살았던 지독한 커피 마니아. 프랑스의 대문호 오노레 드 발자크, 바로 그입니다.
그의 곁에는 늘 커피가 있었다
커피에 대한 사랑을 '커피 칸타타'란 곡으로 만들어 노뢔한 음악의 아버지 바흐. 매일 60알의 원두를 세어 아침으로 직접 커피를 내려 마셨던 악성 베토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이성적인 면에선 대가였지만 커피에 대한 인내심만큼은 극도로 감정적이어서 하인이 빨리 커피를 끓이지 못하면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합니다. 프랑스 계몽 사상가 루소는 "아, 이제 더 이상 커피잔을 들 수 없군!"이란 말로 유언을 대신 했으며, 미혼모였던 조엔 롤랑은 커피 한 잔으로 불우한 현실에 갇힌 잠자던 두뇌를 깨워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해리포터>시리즈를 탄생시켰습니다. 이처럼 수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수많은 예술가들, 위인들의 창작 원천이자 에너지가 되는 것이 커피입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과연 발자크(1799~1850)만큼의 커피 마니아가 또 있을까요?
사실주의 문학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발자크는 세기의 커피 애호가들 중에서도 악명이 높습니다. 굳이 악명이라 표현한 것에는 한 통계학자의 계산에 따라 그가 평생 마신 커피가 무려 5만 잔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하루에만 50잔(80~100잔을 마셨다는 기록도 있습니다.)씩 마셨다는데, 여기에는 그의 글쓰기가 깊게 관련돼 있습니다.
당시 발자크의 별명은 '문학 노동자', '글 공장'이라 불릴 정도로 온종일 글만 썼습니다. 오후 4시에 잠자리에 들어 자정에 일어난 후 다음날 오후까지 꼬박 글을 썼습니다. 하루 14~15시간 이상씩 글쓰기에 매달리며 51년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 100녀 편의 장편소설과 여러 편의 단편소설, 여섯 편의 희곡과 수많은 콩트를 남겼는데 이는 보통 작가들의 10배가 넘는 분량이었습니다.
특히 <고리오 영감> 등 90여 편을 묶어 만든 최고작 <인간희극>은 2,472명의 이름있는 등장인물이 나오고 아무도 다 읽은 사람이 없으며, 발자크를 연구하는 사람들조차 소설의 계보 없이는 파악이 불가능할 만큼 방대하면서도 생생한 묘사력이 뛰어나 사실주의 문학의 백미로 손꼽힙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작품 수, 게다가 주옥 같은 걸작을 탄생시킨 천재적인 아이디어와 집중력, 엄청난 에너지가 집약된 현장에 늘 함께한 것이 커피였다는 사실입니다.
"한밤중에 일어나 여섯 자루의 촛불을 켜고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싲가이 반, 눈이 침침해지고 손이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4시간에서 6시간 정도가 훌쩍 지나간다. 체력에 한계가 온다. 그러면 의자에서 일어나 커피를 탄다. 하지만 실은 이 한 잔도 계속 글쓰기에 박차를 가하기 위함이다. 아침 8시에 간단한 식사. 곧 다시 써내려 간다. 점심시간 때까지. 식사, 커피. 1시부터 6시까지 또 쓴다. 도중에 커피." (슈테판 츠바이크, <발자크 평전> 中)
그가 마셨던 커피는 진한 에스프레소. 게다가 일반인들이 즐기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농후했던 에스프레소를 포트에 가득 채우고 글을 쓰는 내내 사발로 마셨습니다. 과연 수년 전 동서식품 커피 CF 속 광고문구 그대로 발자크는 "잉크 댓니 커피로 원고지를 채웠"던 게 아닐까요? 그런데 그는 왜 이렇게 글쓰기에 매달렸을까요? 또 왜 그렇게 커피를 마셨을까요?
쓰지만 달콤한, 그것이 인생이다
발자크의 비상식적인 글쓰기는 막대한 빚 때문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업에 영 소질 없던 20대 중반의 청년은 대학 중퇴 후 출판업, 인쇄업, 주조업 등 연이은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올랐고, 빚 탕감을 위해 기계처럼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그의 커피 중독은 단지 빚 때문에 시작된 걸까요?
32세의 나이차를 두고 결혼한 발자킄의 어머니는 그가 태어나자마자 그를 유모에게 맡겼습니다. 또 8살의 어린 나이에는 기숙학교에 보냈는데, 발자크가 몸이 쇠약해져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6년 동안 딱 2번의 면회만을 다녀왔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이런 모성 결핍은 발자크에게 불행한 기혼녀, 여성에 반감을 갖게 했고 문학적 모티브로 깊게 자리잡습니다. 설상가상, 그에게 찾아온 사랑 또한 평탄치 않았습니다.
33살 첫눈에 반한 여인은 유부녀, 하지만 그는 구애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끈질김에 폴란드 백작부인 한스카는 남편 사후에 결혼해줄 것을 약속합니다. 이후 사랑의 기다림은 18년간 이어집니다. 그 시간을 채운 발자크의 연서를 묶은 것이 <이국 여인에게 보낸 편지>. 어찌되었든, 연인의 약속에 그는 백 작부인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죽도록 글을 씁니다. 마침내 문인으로 명성을 쌓고, 염원도 이루어져 51세에 결혼을 하지만 그에게 행복은 사치였을까요? 5개월만에 카페인 과다 복용에 의한 심장병 악화로 세상을 떠납니다.
막대한 빚의 청산, 혹은 긴 시간 갈망했던 사랑의 완성. 하지만 발자크에게 커피는 이 둘 이상의 더 큰 존재였습니다.
"커피가 위 속으로 미끄러지듯 흘러 들어가면 모든 것이 움직이기 싲가한다. 생각이 전쟁터의 대부대처럼 몰려오고 전투가 시작된다. 추억은 행군의 기수처럼 돌격해 들어온다. 기병대 군인들이 멋지게 달려 나간다. 논리의 보병부대가 보급품과 탄약을 들고 그 뒤를 바짝 따라간다. 재기 발랄한 착상들이 명사수가 되어 싸움에 끼어든다. 등장인물들이 옷을 입고 살아 움직인다. 종이가 잉크로 뒤덮인다." (발자크, <커피송가> 中)
생전 발자크는 커피를 두고 "내 삶의 위대한 원동력"이라고 표현하곤 했습니다. 어느 과학 논문에는 커피를 찬미하는 글을 기고하기도 했고, 어떤 책은 오직 커피 덕분에 완성한 적이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나폴레옹을 숭배해 스스로 '문학의 나폴레옹'이 되겠다고 창작열을 불태웠던 사람.
분명 발자크에게 커피는 글을 쓰기 위한, 혹은 사랑을 완성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지만, 그 이상의 창작 동력이었고 글쓰기의 일부였으며 사랑의 한 단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독했지만 누구보다 뜨거웠던 그의 삶의 일부였습니다. "악마와 같이 검고, 지옥과 같이 뜨겁고, 천사와 같이 순수하며, 키스처럼 달콤하다'는 프랑스 사상가 탈레랑의 말처럼 커피는 발자크에게 달콤하지만 쓰고, 지옥처럼 고달팠지만 천국의 환희를 선사한 유일한 삶의 친구, 따뜻한 구원이었던 것입니다.
출처 : 아주캐피탈 웹진 Pioneer 127호(10월호) / 천재의 식탁 (오노레 드 발자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