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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길목에 서 있는 이에게 하고 싶은 청춘영화 추천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7. 15. 11:46

  청춘의 길목에 서 있는 이에게 하고 싶은 청춘영화 추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실컷 볼 수 있는 자유? 선거일에 투표할 수 있는 권리? 자기 의식주에 책임을 지는 것? 힘들어도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하는 것? 물론 이 모든 것은 어른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이지 지켜야 할 책임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다 해내고 나서도 왠지 '난 아직 어른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필자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불안을 견디는 내면의 힘'을 의미했습니다. 하는 일이 잘 안 풀려도, 연애가 뜻대로 되지 않아도, 아무리 노력해도 미래가 불투명할지라도, 그 불안을 담대하게 견디는 것.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런 담대함이 생기지 않는 걸 보니, '어른이 된다'는 것에 너무 크나큰 기대를 걸었나 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마음속에서 '진정한 어른'에 대한 정의가 살짝 바뀐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고통도 견딜 수 있는 '무적의 심장'을 갖는 것이 아니라, 삶이 더 나아지리라는 보장이 없어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임을. 좀 더 멋진 나, 좀 더 화려하고 대단한 나를 만들기 위해 분투하기보다는 조금 모자란 나, 결점투성이 나로부터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는 첫걸음이 아닐까요? 


다음 영화들은 우리에게 '심장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무지갯빛 깨달음을 주는 멋진 작품들입니다.





  나만의 시간이 아닌, 모두의 시간 <시간을 달리는 소녀>






시간을 뛰어넘는 '타임 리프'의 초능력이 생긴 말괄량이 소녀 마코토. 엄청난 초능력이 생긴 이후에도 그녀의 일상은 크게 변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초능력이 생기더라도 그것을 아주 '사소한 곳'에만 사용하는 순박한 소녀였던 것이죠. 타임리프를 '대단한 사건'이라기보다 '흥미로운 놀이'로 생각하는 마코토에게 이모는 질문합니다.


"네가 이득을 본 만큼 손해를 보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천방지축 마코토는 잠시 고민합니다. 마코토는 자신도 모르게 '시간을 되돌린다는 것'은 '나의 시간을 내 마음대로 조종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러나 '나의 시간'은 정말 나만의 것일까요? 내 시간을 되돌리는 동안, 타인의 시간이 훼손되는 것은 아닐까요?


마코토는 사소한 재미나 하찮은 필요 때문에 되돌렸던 시간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은 타인의 아픔을 깨닫게 됩니다. 타임리프를 통해 자신의 실수를 타인에게 전가한 후 후회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사랑 고백을 한 소년 치아키에게 타임 리프를 반복하며 가슴앓이를 하기도 합니다. '내 시간이니까 내 마음대로 써도 된다'고 생각했던 그 모든 시간들이 사실은 '타인과 함께했기에 진정으로 의미 있는 시간'이였음을 알게 된 것이죠.


마코토에게 진정한 '성장의 시간'은 바로 내 시간이 온전히 내 것일 수 없다'는 진실을 맞닥뜨린 순간입니다. 나의 시간은 타인의 시간과 반드시 연결될 때에만 비로소 아름다운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던 것이죠.





  나의 가치를 발견하게 해준 친구 <월플라워>





십대가 가장 많이 겪는 불안의 원인 중 하나는 '무리에 속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입니다. 또래집단은 청소년들에게 있어 가장 큰 성장의 힌트이며 동시에 위험이기도 합니다. '월플라워'는 '무도회에서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는 여성'이란 뜻이기도 하고, '집단에서 따돌림 당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올해 고등학생이 된 찰리는 낯선 환경이 두렵기만 한 소심한 아이입니다. 왕따가 되리라는 공포 때문에 수업 시간에 정답을 알고 있어도 말하지 않죠.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경력이 있는 찰리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환영에 시달리곤 했지만, 간신히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현실에 적응하려 애쓰는 중입니다. 이런 찰리에게 드디어 친구가 생기는데요, 의붓남매 샘과 패트릭은 낯선 환경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찰리의 외로움과 특별함을 알아보고 그를 진정한 친구로 받아들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친구에게 성추행을 당한 샘은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을 학대합니다. 자신을 진정으로 아껴주는 찰리 같은 남자가 아니라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나쁜 남자들만 골라 사귀죠. 찰리는 샘을 이해할 수 없어 문학 선생님께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왜 멋진 사람들은 자기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는 걸까요?" 선생님은 대답합니다. "우리는 자기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만큼 사랑받기 때문이지."

                                                                            

찰리는 샘의 상처와 위악 뒤에 가려진 그녀의 따스한 진심을 알아보고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샘도 '공부만 잘하는 샌님'으로 낙인 찍힌 찰리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에게 멋진 타자기를 선물합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찰리에게 그녀는 속삭입니다. "우리 이야기를 써 줘."

무도회에서 항상 '월플라워'로 소외당해온 찰리는, 무대 정중앙이 아닌 무대 가장자리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삶의 진실을 통찰할 줄을 압니다. 하지만 자신의 사랑을 진심으로 고백할 용기는 부족하죠. 샘은 그런 찰리에게 용기를 줍니다. "구석에 가만히 앉아 너의 인생보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앞세우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돼." 이 영화는 자기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용기야말로 우리의 자아를 훌쩍 자라게 하는, 향기로운 영혼의 비료임을 보여줍니다.





  어떤 장애도 굴하지 않는 <빌리 엘리어트>






많은 사람은 '꿈을 이루기 위한 조건'때문에 꿈 자체를 포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 하나로 온갖 장애물과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변치 않는 감동을 전합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가난한 탄광 마을에서 태어난 소년 빌리가 온갖 우여곡절 끝에 위대한 발레리노의 꿈을 이루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의 아름다움은 역경과 싸우는 주인공의 '불굴의 의지'나 '특별한 천재성'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화는 평범한 사람들의 두려움과 조금은 모자란 듯한 재능을 솔직하게 보여줍니다. 무엇보다도 소년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족 모두가 겪어내는 아픔과 희생을 조용히 비춰줍니다. 평생 탄광촌에서 살던 빌리 아버지는 빌리가 발레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노발대발합니다. 그러나 빌리의 재능을 알아본 윌킨슨 부인은 빌리를 런던의 로얄발레학교로 보내려 합니다. 윌킨슨 부인의 조언, 춤을 출 때 가장 행복해하는 빌리의 모습을 본 아버지는 마음을 바꾸게 됩니다. 빌리를 런던으로 보내기 위해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아버지. 평생 탄광밖에 모르고 살았던 그에게, 발레의 꿈은 낯설기만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빌리가 이 혹독한 탄광촌 생활을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길이 발레임을 알았습니다. 


빌리는 춤을 출 때 비로소 진정한 자기 자신, 아니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또 다른 나가 되는 것 같다고 고백합니다. "마치 몸에 불이라도 붙은 느낌이에요. 전 그저 한 마리의 날아오르는 새가 되죠. 마치 전기처럼요."


어떤 장애물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꾸밈없는 열망을 깨닫게 되는 순간. 그 때가 비로소 우리가 진정한 어른이 되는 순간이 아닐까요?




출처 : 아주캐피탈 사외보 좋은날 (글. 정여울)


정여울은 문학평론가입니다. <한겨레신문>에 ‘정여울 의 청소년 인문학’ 코너를 연재하고 있으며,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그때 알았더라 면 좋았을 것들』, 『시네필 다이어리 1・2』, 『소통』, 『마음의 서재』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