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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성과 안정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 헤다 가블러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7. 8. 16:15

 모험성과 안정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 헤다 가블러 





안정과 모험은 인생의 마디마디에서 부딪치는 갈림길입니다. 한쪽에 ‘잘 닦여진 길’이 있고, 다른 쪽에는 ‘가보지 않은 길’이 있습니다. 앞날을 계획하는 큰 결정에서부터 하루 일과를 결정하는 사소한 일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갈등 구조는 안정과 모험입니다. 


남들이 가는 안정되고 편안한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불확실하고 위험이 따르더라도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도전과 모험의 길을 택할 것인가. 문학작품의 기본 갈등 구조는 안정과 모험입니다. 문학작품의 주인공들은 안정과 모험 사이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게 되고 그로 인해 그들의 삶이 결정됩니다. ‘근대 연극의 아버지’로 불리는 노르웨이의 극작가이며 시인인 헨리크 입센(Henrik Ibsen, 1828~1906)은 여성의 인권과 해방을 다룬 『인형의 집 A Doll’s House, 1879』으로 최초의 페미니스트 작가라는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의 희곡인 『인형의 집』, 『유령 Ghosts, 1881』, 『헤다 가블러 Hedda Gabler, 1890』 등에는 진정한 자신의 갈망을 버리고 낡은 사회적 인습과 체면을 위해 안정적 삶을 택하는 상류층 여성들이 있는가 하면, 비록 사회적 지위는 낮지만 용감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사회적 편견을 뛰어넘어 정직하게 살아가는 인물도 등장합니다. 이들 주인공을 통해 입센은 안정 속에 가려진 위선과 불편한 진실을 은폐함으로써 더 큰 비극이 일어날 수 있음을 극화합니다.




 모험을 원하지만 삶은 그러하지 못한…….




(flickr_Duke Yearlook)




『헤다 가블러』에서 주인공 헤다는 부와 명예를 상징하는 가블러 장군의 딸입니다. 헤다는 생에 대한 ‘강렬한 갈망 thirst for life’이 누구보다 강한 여자입니다. 지적으로는 여성의 자유를 주장하는, 시대를 앞서는 사고를 하고 있지만 정작 낡은 인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여성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사회에서 스스로 주체적 삶을 영위하는 대신에 자유분방한 삶을 즐기는 애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생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자 합니다. 정신적으로 교감하는 진정한 애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헤다는 안정적 삶을 위해 교수 임용이 보장된 중산층의 테스만과 결혼합니다. 



(flickr_UMTAD)



그러나 결혼 후 이상과 현실의 극심한 괴리에서 헤다는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그에 더하여 헤다가 학창시절에 경멸했던 테아가 사회적 편견과 도덕적 인습을 뛰어넘어 헤다의 옛 애인을 헌신적으로 도와줌으로써 그가 뛰어난 학자로 촉망받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헤다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이 ‘형편없는 겁쟁이’였음을 고백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무시했던 테아가 주체적으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정직하고 용감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자신에게는 그럴 용기가 없었다고 절규합니다. 그러나 헤다는 자신의 주체성을 찾는 대신에 역설적으로 온전한 사회인의 모습으로 돌아온 옛 애인을 다시 자유분방한 사람으로 되돌아가게 함으로써 자신이 갈구하는 자유로운 삶에 대한 대리만족을 얻고자 합니다. 그 결과로 그는 옛 애인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자신도 자살하는 비극적 결말을 맞습니다. 




 온몸으로 주체적 삶을 회복하려 할 때 



안정과 모험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피할 수 없는 내적 갈등입니다. 우리는 현실적 안정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안정만을 추구하기에는 목마른 영혼이 갈 곳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네 인생은 안정에만 안주할 수 없는 꿈과 이상, 도전과 모험의 정신을 갈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정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수동적 생활을 지양하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주체적 삶을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성찰하여 자신에게 맞는 균형된 삶을 꾸려나가는 일에 좀 더 용감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거죠. 



출처 : 아주캐피탈 사외보 좋은날 (글. 신숙원)


신숙원은 현재 건양대학교 대외협력부총장이며 서강대학교 명예교수로 있습니다. 영미문학자로서 다양한 문학작품 속에 숨어 있는 삶의 이면과 다양성을 예리하게 바라보며 행복한 삶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