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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나만 행복할 수 있는가?" -슈바이처가 던지는 모두의 행복론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11. 20. 11:06

"어떻게 나만 행복할 수 있는가?" 

-슈바이처가 던지는 모두의 행복론







'어디론가 불쑥 떠나고픈 계절이다. 긴 기적 소리를 울리며 떠나는 기차 여행은 얼마나 낭만적인가.' 기차를 떠올리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21세기의 성자'로 불리는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 그가 아프리카로 떠난 것은 고향 마을 권스바흐에서 성 금요일(부활절 직전의 금요일) 오후 예배가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막 그치려는 참이었습니다. 숲 모퉁이를 돌아 기차가 나타났고, 그는 그 기차를 타고 훌쩍 아프리카로 떠났습니다. 안정된 현재와 보장된 미래,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꿈을 향해 질주할 수 있는 용기란 얼마나 큰 것일까요?




아프리카로 향하다



  

195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인류의 스승 알베르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1965). 서른 살의 나이에 의학 공부를 시작했을 때 그는 이미 스트라스부르 신학대학의 젊은 교수, 파이프오르간 연주자, 작가라는 명성을 얻은 인생에서 뚜렷한 성취를 달성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기꺼이 내려놓고 슈바이처는 새롭게 의학 공부를 시작했고 거침없이 아프리카의 원시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시작은 우연히 본 한 프랑스 잡지 속 기사에서부터였습니다. 통고강 유역에 사는 아프리카 흑인들의 참상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그것을 본 후 그는 성서 속 '부자와 가난한 라자로'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깊은 죄책감에 빠졌습니다.



저 멀리에 있는 그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할수록, 커다란 인도주의 과제를 저버리고 전혀 돌보지 않는 우리 유럽인이 이상하게 여겨졌다. 부자와 가난한 라자로의 비유(누가복음 16장)는 꼭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로 말하자면 부자다. (중략) 부자는 분별이 없어 자기 집 문 앞의 라자로를 저버리는 죄를 지었다. 우리가 바로 그 부자다.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14쪽



슈바이처는 육체적 고통은 인종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에게 가장 절박한 실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 주어진 흑인에 대한 책임을 깨닫고 이행하기 위해' 의삭 공부를 시작했고 "자연 속에 사는 흑인들은 우리 백인처럼 그리 많은 병에 걸리지도 않고 고통도 못 느낀다."는 친구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가 의료활동을 벌인 랑바레네의 유일한 의사가 되었습니다.


<물과 원시림 속에서>는 슈바이처가 1913년 7월 랑바레네에 도착해 1917년 9월 그곳을 떠나기 전까지 4년 반의 세월 동안 집필한 책입니다. 초기 의료 활동을 다루고 있는데 사실 자서전으로 시작한 글은 아니어서 원시림 속 의료 활동을 기록한 의료보고서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풍토에서 몸소 수많은 질병을 관찰하고 진료하는 동안 슈바이처가 깨달은 의학적 발견과 선교 활동, 인류학적 통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가득 담겨 있어 책은 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담담히 기록한 의료 활동과 깨우침은 그 어떤 것보다 깊은 감동을 줘 슈바이처의 자서전으로도 손색 없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유럽인의 관점에서 무지하다고 보여졌던 흑인들의 삶과 미개하다는 등의 흑인들에 대한 오해, 아프리카의 환경 등도 세밀히 관찰하고 기록해 짙은 휴머니즘에 더한 풍부한 지식까지 얻을 수 있는 교양서나 다름없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은총이었다



물과 원시림! 이 느낌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마치 꿈을 꾸는 듯했다. 어디에선가 상상화로 본 적이 있는 태고의 풍경이 바로 눈앞에 펼쳐졌다. 어디까지가 강이고 어디부터가 땅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43쪽



긴 여정을 거쳐 랑바레네에 도착했을 때 슈바이처는 시간이 흘러도, 방향을 바꿔도 같게 보이는 단조로운 자연에 신비한 힘을 느꼈고 아프리카에 푹 매료됐습니다. 하지만 의료활동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았습니다. 의료 활동에 필요한 물자까지 스스로 마련해야 할 만큼 현실은 슈바이처의 헌신을 강요했습니다. 의료물자는 바흐에 관한 그의 책에서 얻은 인세수입과 파이프 오르간 연주회로 번 돈으로 조달했고, 거처는 다행히 파리복음선교회가 마련해주었지만 병원이 완성되기 전까지 사용할 마땅한 공간은 찾지 못해 닭장을 진료실로 써야만 했습니다. 아내가 의료기구를 관리하며 외과수술 준비를 도왔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30~40명의 환자를 치료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높은 습도는 약품 보관에 어려움을 겪게 했고 환자들에게 약의 사용법을 이해시키는 데만도 많은 시간이 걸렸으며 뜨거운 태양 아래서의 진료는 피로도를 더욱 가중시켰습니다. 그야말로 최악의 환경, 최악의 컨디션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행복했습니다. 





이곳에서 흑인들을 진료하고 돕는 기쁨에 비하면 잠시의 이런 불편함은 별것이 아니다. 부족한 물자지만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직 많다. 상처가 곪고 헐어 고생하던 환자가 마침내 깨끗한 붕대를 감고, 이제는 상처 난 발로 진흙 속을 뛰어다니지 않아도 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여기에서 일하는 보람이 있는 것이다!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65쪽



병에 걸려도 어떤 병인지도 모른 채 죽음과 만나야 하는 사람들. 슈바이처는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문화를 존중했고 생명의 존엄함을 체험했습니다. 무엇보다 흑인들이 걸리는 질병 중 다수가 백인들에 의해 옮겨졌고 그럼에도 어떤 의료 혜택이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유럽에 사는 자신들과 똑같이 아프고 더 끔찍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더 큰 책임감을 느끼며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자신의 기회에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이런 가련한 환자가 실려 왔을 때의 내 감정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까! 나는 사방 수백 킬로미터 안에서 그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중략) 그렇다고 내가 그의 생명을 구해준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죽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를 위해 고통의 나날을 줄여줄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언제나 새로이 나에게 주어진 커다란 은총이다.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140쪽



수술이 끝났다. 나는 환자가 깨어날 때까지 어두운 입원실에서 그의 옆을 지켰다. 정신이 완전히 다 들기도 전에, 그는 놀란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계속 같은 말만 반복했다. "이제 안 아파요. 정말 안 아파요!" 그는 내 손을 더듬어 찾더니 한참을 놓지 않고 꼭 쥐고 있었다. (중략) "너희는 다 형제니라(마테복음 23장)" 백인과 흑인이 마주 앉은 그 자리에서 우리 모두는 이 말을 진실로 경험했다.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141쪽




인간다운 삶이란



   

누구를 대하든 존엄성을 지닌 한 인간으로 대해야 한다고 말했던 슈바이처. 그는 앞선 문명을 가진 백인, 그들의 목숨을 좌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권위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 담담히 아프리카에 다가갔습니다. 



이곳에서 신문 같은 것은 거의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 지난날의 시끄러운 사건을 보도하는 신문기사를, 시간이 거의 멈춘 듯 고요한 이곳에서 읽으면 그렇게 기괴할 수가 없다. (중략) 유럽의 흥분과 허영은, 배우고 안 배우고를 떠나 이곳 사람들에게 모두 호들갑처럼 보인다. 인간이 먼저이고 자연이 나중인 곳이 지구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이, 이곳에서는 그저 이상할 따름이다.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226쪽



풍족하다고 외치지만 오히려 텅 빈 껍데기처럼 공허하고 평화롭지 않은 문명인들의 삶. 자연 앞에 아무 것도 아닌 그 삶에 슈바이처는 회의가 들었고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을 때는 부끄러움마저 느꼈습니다. 



전쟁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순간적인 열정이나 정당방위로 미화하여 다소 이상화된 전쟁만을 생각한다. 하지만 짐에 눌려 원시림의 늪에 빠지고 쓸쓸히 죽어간 짐꾼들의 시체가 널린 아프리카의 전쟁 무대를 하루만 여행한다면, 그리고 원시림의 암흑과 고요 속에서 감격과는 상관 없는 이 죄 없는 희생자들의 관점에서 전쟁의 실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다면 이들도 정신이 들 것이다.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256쪽



슈바이처는 병원에서 많은 원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생각'을 많이 하고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갖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비록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라도 백인보다 더 깊이 있게 생각하는 그들을 보며 그의 아프리카 행이 바로 속죄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와 우리의 문화는 커다란 죄과의 짐을 지고 있다. 흑인에게 선행을 베풀어야 할지를 선택할 자유가 우리에게는 없다. 우리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가 베풀어야 하는 선행이란 자선이 아니라 속죄이다.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258쪽



어떠한 상황에서도 용기와 신념을 잃지 않았던 슈바이처. 그는 "내 눈으로 확인한 그들의 비참함은 내게 힘을 주고, 인간에 대한 신뢰는 나의 확신을 올곧게 유지시켜준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는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 책입니다. 원주민들이 앓고 있는 병과 그 병을 어떻게 치료했는지 세세하게 기록했기에 비위가 약한 필자는 책장을 잠시 덮어두었다가 읽기를 반복했습니다. 독자로서 읽는 이도 이렇게 괴로운데 슈바이처는 어떻게 그런 힘든 삶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였던 걸까요? 인간에 대한 사랑과 희생정신이 없었다면 단 1초도 머물지 못했을 것입니다.


"생명에 대한 존경심을 갖은 사람은 단순히 기도만을 하지 않는다. 생명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투신하는 것이다. 생명계 전체를 보건대 자신도 그 일원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처럼 90세까지 그를 아프리카의 의사로 지탱해준 힘은 바로 진한 휴머니즘과 '이상과 열정을 기억하라'는 그의 평소 신념이었을 것입니다. 




출처 : 웹진 Pioneer 152호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