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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할 줄 아는 지혜의 힘" 애거서 크리스티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11. 4. 10:48

"포기할 줄 아는 지혜의 힘" 애거서 크리스티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권만 읽은 사람은 없다'고 할 만큼 뛰어난 필력으로 추리소설 분야에 독보적인 획을 그은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 그녀에 관한 원고를 청탁 받을 무렵 필자는 올해 4월 총 79권으로 완간된 그녀의 소설 가운데 <사랑을 배운다>를 읽는 중이었습니다. <사랑을 배운다>는 애거서가 언니 로라와 동생 설리를 중심으로 소설의 원제인 '짐(The Burden)'이 의미하는 것처럼 사랑의 본질을 탐구한 소설입니다. 노년기에 쓴 소설이지만 대작가의 필체는 여전히 형형했고, 그녀의 재능에 다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과연 이런 재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그녀다운 그녀만의 이야기



19세기 말 영국에서 태어나 85세의 일기로 세상과 이별하기 전까지 애거서 크리스티는 전 세계적으로 40억 부가 넘는 판매 기록을 올리며 '추리소설의 여왕'이란 닉네임을 거머쥐었습니다. 우리 주변의 일상이 불가사의한 사건이 되고, 내 이웃, 혹은 화자 자신이 범인이 되는 오늘날 추리소설의 모든 공식은 바로 그녀에게서 비롯된 것. 추리소설 작가가 되지 않았다면 완벽한 범죄자가 됐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그녀의 작품들은 생생하고 치밀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ABC 살인사건>, <빛이 있는 동안> 등 그녀의 대표작이자 한국 독자들이 가장 사랑한 작품들은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스릴과 오싹함을 불러옵니다.





그녀가 1950년부터 시작해 75살이 되던 1965년까지 장장 15년에 걸쳐 완성한 자서전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은 그녀가 사망한 1년 뒤인 1977년에 세상의 빛을 보았습니다. 추리소설의 대가답게 자서전 또한 범상치 않았으니 탄생부터 시작하는 시간 흐름을 따르지 않고 어린 시절을 추억하다 손자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글쓰기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풀어놓다 옆길로 빠져 가정부의 기묘한 버릇을 설명하는 등 읽는 내내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서전은 아무래도 너무 거창한 표현 같다.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의도적으로 연구한 책이라는 뜻 같기도 하고, 엄격하게 연대순으로 이름, 날짜, 장소를 늘어놓은 책이라는 듯 같기도 하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은 아무 데고 손을 푹 담가 한 움큼 건져 올린 기억들이다."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 12쪽



평범하지 않은 전개, 매력적인 필력은 다른 자서전과는 확연히 다른 애거서 자서전만의 특징, 그래서인지 800페이지에 달하는 번역본이 소설을 읽듯 재미있게 읽힙니다. 또한 자서전에는 여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기쁨, 개인적인 작품 후기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진과 함께 세계대전 당시 여성들의 삶을 생생히 그려 독자들로 하여금 보다 새로운 형식의 자서전을 만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애슈필드의 행복한 아이



"우리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행운 중 하나는 바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누리는 것이다. 나는 매우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사랑하는 정원과 집이 있었다. 지혜롭고도 인내심 많은 유모가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셨고,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누리며 훌륭한 부모가 되어 주셨다."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 19쪽



애거서 크리스티는 자서전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회고합니다. 유쾌한 뉴욕 출신의 아버지와 상상력 풍부하고 자기만의 세계가 있던 영국 태생의 어머니 사이에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애거서는 어린 시절을 '애슈필드'라고 불리는 빅토리아 양식의 집에서 보냈는데, 어린 눈에 비친 그녀의 집은 풍족했고 애슈필드의 정원은 그녀에게 큰 의미를 주었습니다. 감탕나무, 개잎갈나무, 테레빈나무, 너도밤나무의 일종인 코퍼비치, 그리고 두 그루의 전나무….


그녀는 정원에 있는 모든 나무에 의미를 부여했으며 다양한 나무들이 즐비한 웅장한 숲 속에서 상상놀이를 즐겼습니다. 앤드류 랭이 편집한 동물이야기 모음집 등 동화책 읽기도 너무 좋아했는데 이것은 고전적인 건축 양식, 매혹적인 정원과 함께 추리소설을 쓰는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어머니는 자주 심장마비를 일으켰고 집안의 재정상태는 나빠졌습니다. 그럴수록 애거서 크리스티는 더욱 책에 빠져들었습니다. 로맨스 소설부터 쥘 베른의 모든 작품을 프랑스 원서로 읽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열한 살에 우연히 한 인쇄물에 글을 싣게 되는데, 자서전에 쓴 표현대로 "어쩌다 보니" 실린 글은 전차가 처음 운행된 날에 쓴 시였습니다.



"나는 아무 꿈도 없었다. 그 무엇도 잘하는 것이 없었다. 테니스와 크로케를 좋아하긴 했지만 잘하지는 못했다. 작가가 되기를 긴 세월 염원하다 마침내 성공했다고 말하는 편이 훨씬 극적이겠지만, 사실은 한 번도 작가가 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열한 살에 내 글이 인쇄물에 실린 적이 있었는데…(중략) 나는 전차가 운행된 첫날에 시를 썼고, 이 최초의 문학적 행동은 인쇄였다. (중략) 우쭐했지만 그렇다고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아니었다. (중략) 사실 나는 딱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행복한 결혼."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 195쪽



한 번도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 없었던 애거서 크리스티. 하지만 어린 그녀가 책, 글쓰기와 인연을 맺게 된 데에는 매지 언니의 영향이 컸습니다. 언니는 글쓰고 말하는 능력을 타고났고, 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린 애거서를 완전히 매혹시켰습니다. 매지 언니는 결혼 전 직접 쓴 단편이 당시 영국 유명 잡지인 <배너티 페어>에 여럿 실리는 등 재능이 뛰어났습니다.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추리소설에 대한 마음을 품게 만든 셜록 홈즈 이야기를 처음 들려준 것도 매지 언니였습니다. 재능이 넘쳤던 언니와는 달리 애거서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재능도 없었고 당연히 작가로서의 길은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어느 불쾌한 겨울날, 카드놀이를 하는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이야기를 쓰지 그러니?" "이야기요?" "그래, 매기언니처럼." "에이, 제가 무슨 재주로…." "안 될 것도 없지." 하긴 쓰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써보기 전에는 쓸 수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어." 그것으로 충분했다. 어머니는 늘 그렇게 충동적으로 사라졌다가 5분 후 공책을 들고 나타났다.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 289쪽




"안 될 것도 없지."



그저 행복한 결혼을 꿈꾸던 해거서가 처음 글을 쓰게 된 것은 바로 어머니의 이 한마디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바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단편 하나를 완성했는데 <아름다움의 집>이었습니다. 처음 글을 쓰는 사람이 다 그렇듯 당시 그녀가 즐겨 읽던 책이나 좋아하는 작가의 취향이 듬뿍 담겨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가능성을 보여준 최초의 작품이 분명했고, 이후 그녀는 <날개가 부르는 소리>, <외로운 신> 등의 여러 편의 단편을 써서 잡지사에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우편물은 즉각 반송되었고, 그 안에는 보통 "유감스럽게도…"로 시작하는 편지가 동봉되어 왔습니다.


'유감스럽다', 이 한 마디는 어쩌면 그녀 인생에 큰 화두 같은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의 격려에 힘입어 처음 글을 썼을 때는 수많은 출판사들로부터 유감스럽다는 편지를 받아야 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파리로 건너가 피아노와 성악을 공부하며 피아노 연주자를 꿈꿨을 때는 지도 선생님으로부터 유감스럽게도 재능이 없다는 조언들 들었으며, <니벨룽겐의 반지>와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보며 성악에 관심을 가졌지만 오페라 하우스 관계자로부터 유감스럽게도 오페라에 부적합하다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쯤 되면 낙담과 좌절을 넘어, 세상을 비뚤게 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애거서는 달랐습니다. 피아노 선생님으로부터 끼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오히려 그 조언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기까지 했습니다.



"기껏해야 2류밖에 될 수 없음을 잘 알면서도 너무나 하고 싶어 끝까지 노력하는 것만큼 인생에서 영혼을 파괴하는 일은 없다."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 296쪽




미스터리 여왕의 탄생



<출처 : http://blogs.indiewire.com/>



1912년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크리스티 대령과 결혼했고,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간호사로 자원했습니다. 그때 그녀는 약제 조제실에서 근무하게 되는데 이때의 경험은 추리소설을 쓰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에도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조제실에서 일하는 동안 나는 처음으로 추리소설을 쓸 생각을 했다. 매지 언니와 예전에 내기를 한 이후로 추리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은 계속 내 마음 속에 머물고 있었다. (중략) 나는 내가 쓸 수 있을 만한 추리소설의 종류가 무엇일까 고민했다. 독에 둘러싸여 있으니 독살에 관한 이야기를 쓰면 될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 377쪽



그 소설이 바로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입니다. 하지만 출판사로부터 돌아온 첫 대답은 "유감스럽게도"였습니다. 하지만 2년 만에 출판사로부터 다시 연락을 받았고 1920년 우여곡절 끝에 그녀는 첫 소설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비밀 결사>, <골프장 살인사건> 등의 추리소설을 출간하면서 그녀는 추리소설 작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렸을 적에 육아실 벽에 매달려 있던 접시 그림이 종종 떠오른다. 토키레가타에서 코코넛 맞추기를 해서 딴 것이 아닌가 싶다. 접시에는 '기관사가 될 수 없다면 기차 정비공이 되어라'라고 적혀 있었다. 이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고의 좌우명이다. 나는 그에 충실하려고 애썼다. 지금까지 이런저런 일에 도전해 보았지만 소질이 없어 잘 하지도 못하면서 기필코 해내고 말겠다고 고집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 606쪽



인생이 수없이 "유감스럽게도"라고 이야기했음에도 그녀는 늘 희망을 품었습니다. 피아니스트의 꿈이 좌절됐을 때도, 성악가의 꿈이 그저 꿈으로 남았을 때도, 그녀가 쓴 소설들이 매번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했을 때도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으로부터 배신당했을 때도 그녀는 언제나 "그럼요, 희망은 언제든지 있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오늘은 무엇을 할까?"를 생각하며 살아 있음을 기뻐하고 감사해 했던 애거서 크리스티. 인생을 살아가면서 항상 기쁘고 행복한 일만 일어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줄 알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얼마든 꿈을 이룰 수 있음을 애거서 트리스티, 그녀의 자서전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출처 : 웹진 Pioneer 151호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