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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영웅의 실수에 더 가혹할까?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6. 1. 16:32

왜 우리는 영웅의 실수에 더 가혹할까?





8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쥐, 미키마우스. 그런데 다른 이유로 유명한 쥐가 또 있습니다. 스칸디나비아반도 산악지대에 사는 '레밍(Lemming)'은 크기 3.5cm의 작고 귀여운 들쥐지만, 의외로 충격적인 반전을 갖고 있습니다. 레밍 무리는 이동 중 해안절벽에 도달해 리더가 절벽 아래로 뛰어들면 그 뒤를 따르던 무리 역시 이유 불문 모두 리더를 따라 투신하며 '집단자살'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한 자긍심과 애국심을 일깨우며 스포츠 스타를 넘어 국민 영웅이 된 이들. 빙판의 여왕 김연아 선수가 그렇고, 마린보이 박태환 선수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최근 박태환 선수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금지약물 파문에 휘말리며 국민 죄인으로 추락, 아시안게임에서 획득한 메달을 모두 반납하는 한편 선수 자격까지 정지됐습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기로 정평 난 박태환 선수였으니 의외라는 반응에 실망감이 컸던 탓이지만, 더 의외인 건 이후의 여론이었습니다.


사실 믿는 도끼에 제대로 발등 찍혀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일, 그 아픔은 몇 곱절 더 아픕니다. 하지만 평소 우리가 아는 박태환 선수의 성품과 진정성을 감안한다면 이건 좀 과하지 않냐는 의견들도 있습니다. 더 큰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고도 쉽게 용서 받고 제 갈 길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영웅들의 잘못에는 유독 가혹했던 게 사실입니다.


살기 좋은 청정 스칸디나비아반도 산악지대에 사는 들쥐, 레밍의 집단자살의 시작, 그러니까 레밍 무리가 절벽으로 어디든 뛰기 시작하는 그 첫 스타트도 알고 보면 '무작정'에서 출발합니다. 몇 마리가 갑자기 뛰기 시작하면 주변 레밍들이 영문도 모르고 따라 뛰는 것이죠. 뛰면서 점점 다른 레밍들이 합류, 그렇게 수천 마리들이 절벽을 만난다 해도 달라지지 않고 리더의 투신에 줄줄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이 레밍의 레이스에서 사람들의 닮은 꼴을 찾아냈습니다. 맹목적으로 남을 따라 하는 무수한 행동들, 마치 레밍처럼 우리도 그런 적이 꽤 많습니다. 출근길 지하철역에서 한 사람이 뛰면 영문도 모르고 너도 나도 따라 뜁니다. 2002년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이 뮤추얼 펀드가 대세라고 이야기했을 땐 온 국민이 뮤추얼 펀드에 올인하다시피 했습니다. 일본에서 5~6만부 팔란 '아침형 인간'에 관한 책은 우리나라에 들어와 50만 부 이상이 팔렸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모두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 한다며 때아닌 새벽 별 보기 열풍이 일어났습니다. '핫'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림자도 보지 못한 '허니 버터칩'을 사기 위해 온 동네 편의점을 배회한 일, TV에 나온 맛집이라면서 길고 긴 대기 행렬에도 기꺼이 동참했던 경험. 이러한 심리 현상을 심리학자들은 '레밍효과(Lemming effect)'라고 명명했습니다.




다수결의 법칙의 오류



  

다수의 결정에 따라 의사를 통일하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 다수결의 원칙은 여러 의견의 난립에서 올 수 있는 혼란과 여러 사람을 한 자리에 모아 통일된 의견을 내기까지의 시간 및 비용을 최소화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 손꼽힙니다. 하지만 미국 예일대학교 심리학과 어빙 재니스 교수는 다른 연구 결과를 내놨습니다. 


그는 집단이라는 것은 응집력을 갖기에 동일한 생각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존재하게 되고, 이로 인해 개인이 의견을 제시하기 어려워지며 다수의 의견에 쉽게 동조하게 되어 구성원들의 성향을 극단으로 치닫게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이것을 '집단 극화(group polarization)'라 이름 붙였습니다.


특히 이런 현상은 응집력이 강할 수록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이론이 나오게 된 데에는 쿠바 카스트로 정권에게 49년이란 장기 집권을 가능케 한 미국의 굴욕적인 비밀 작전, '피그만 침공 사태'가 있었습니다.


1960년 미국은 카스트로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중앙정보국의 주도 하에 쿠바인 망명자들을 모아 침공군을 조직, 1961년 4월 작전을 감행했습니다. 이 작전으로 쿠바 혁명에 반대하는 민중봉기가 일어나 엄청난 지원군을 얻고 자연스레 정권이 붕괴되리라 믿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대실패였고 포로들을 돌려받기 위해 미국은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작전 실패의 원인을 분석한 재니스 교수는 당시 작전을 결정한 중앙정보국의 구성원들이 대부분 출신학교도 같은 친분이 깊은 인물들로, 빠르고 신속하게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합리적이기보다 비슷한 성향이 우세화돼 극단적인 방향으로 흘렀다고 결론지었습니다.


황우석 박사 사태도 비슷한 사례로 꼽힙니다. 권위적이고 카리스마 넘쳤던 황우석 박사 아래서 연구팀원들은 상당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있었고, 리더의 카리스마로 인해 누구도 반대 의견을 내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설상가상 국내외의 수많은 관심은 빨리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이어졌으니 가장 이성적인 과학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지극히 비이성적인 결과를 내고 만 것입니다. 개인이 아닌 다수였기에 생긴 일이었을 터. 박태환 선수에 대한 여론 역시 비슷한 경로로 짐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믿었던 사람의 수만큼 실망의 목소리가 많았을 테고, 그 목소리는 하나 둘 모여 점점 커다란 그룹을 형성해 스스로의 논리를 주고받는 사이 극단적으로 치달았을 것입니다.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뮤추얼 펀드를 비롯해 아침형 인간, 황우석 박사 사건 등 한 시대를 풍미하며 우리를 들었다 놨다 했던 일련의 일들. 돌아보면 자신의 정확한 판단 없이 그룹의 결정을 수용하며 그렇게 묻지마 동참을 이끌었던 것은 아닐까요?


문제는 현재가 소셜네트워크를 떠나 살 수 없게 된 세상이라는 점입니다. 점점 익명성이 난무하는 현대사회에서 소통과 공감을 통해 인류의 교류를 이끌고자 했던 소셜네트워크는 오히려 생각이나 이념이 비슷한 사람끼리의 소통만을 확대해 편향성을 심화시켰습니다. 듣고 싶은 이야기, 들려주는 이야기만 소통하는 '집단 극화'가 이루어졌고 단순히 생각하는 것을 넘어 세상을 좌우하는 논리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것, 다른 길을 가는 것을 오히려 축복이라 생각하라. 자신 삶의 주인이 되는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이다."


여러 사람이 가는 길과 다른 길은 '틀린 길'이 아닌 '다른 길'입니다. 다수결의 원칙이 비교적 합리적이기는 하지만 늘 옳은 것은 아니라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 나를 잘 아는 사람, 혹은 내 의견에 손을 들어줄 사람과만 대화하는 것은 진짜 소통이 아닙니다. 개개인은 물론 리더라면 특히 더 자신의 역할의 중요성을 염두에 두어 의견을 정확히 정리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해서 합의점을 찾으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 자유로운 쌍방의 소통이 가능해져야 그 사회는 건강해집니다. 




출처 : 웹진 Pioneer 146호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