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츠의 왕' 경쾌하고 싱그러운 인생의 맛을 노래하다
'왈츠의 왕' 경쾌하고 싱그러운 인생의 맛을 노래하다
시나브로 초록이 빛을 더해가는 봄. 폭발하는 자연의 아우성에 맞춰 저절로 멜로디가 흥얼거려지니 경쾌한 3/4박자의 춤곡, 왈츠입니다. 낭만적이면서도 밝은 선율로 듣는 순간 평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왈츠는 오스트리아의 음악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게 의해 춤의 반주 음악에서 세계적인 장르 음악으로 재탄생 됐습니다. 특히 그의 음악관은 왈츠와 꼭 닮았는데 이는 오롯이 그의 삶, 무엇보다 식도락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인생은 아름다워"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올 봄에도 어김없이 거리 곳곳을 한 음악이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다름 아닌 밴드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 이즘이면 마치 크리스마스 캐롤처럼 무한 반복되며 설레는 우리 마음을 더욱 하늘하늘 흔들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클래식에도 이런 봄의 계절 노래가 있습니다. 뽀얀 꽃을 피워 올린 부드러운 수양버들의 군무도, 청명하게 흐르는 강물의 풍경도, 금세라도 꽃망울을 터뜨릴 듯 풍성하게 부푼 목련의 자태도 모두 이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합니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의 악보>
바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An der schonen blauen Donau)'입니다. '왈츠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재능을 뛰어넘어 '왈츠의 왕'이라는 명성을 얻은 아들 요산 슈트라우스(Johann StrauB, 1825~1899) 2세의 대표곡이자 오스트리아의 제2 국가로 불리며, 왈츠의 대명사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1867년 당시 궁중무도회 음악 감독으로 있었던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한 해 전인 1866년에 치러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해 실의에 빠진 자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곡입니다. 봄의 노래라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탄생 배경이지만, 작품명만 들어도 자동적으로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멜로디를 흥얼거리면 어떻게 이 곡이 봄을 연상시키는지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나우강의 전원 풍경>
반짝반짝 아름답게 빛나는 도나우 강과 그 속에 흐르는 완연한 평화, 화사하고 경쾌한 느낌이 그대로 봄이기 때문입니다. "첫 소절을 듣자마자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지고 눈에는 생기가 돌았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의 전율이 스쳐갔다."는 드 라 가르드 백작의 말처럼, 오스트리아인들에게 무한 애국심과 자부심을 심고, 따뜻한 위로를 건넨 곡은 도도하고 장중하게 흐르는 강을 통해 오스트리아를 넘어 전 세계인에게 아름다운 인생의 충만함을 낭만적으로 느끼게 했습니다.
사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비롯해 159곡의 왈츠, 그리고 수많은 오페레타(operetta, 오페라보다 작은 규모의 공연)를 통해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이야기하고자 한 것 또한 바로 이런 인생의 즐거움이었다고 합니다. 어떤 굴곡이 있어도 결국 삶은 아름답고 곧 희망의 날들이 오리라는 인생관은 고스란히 음악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최고의 음악가로 엄청난 부와 영광을 누리는 속에서도 한결같이 서민적이고 소박하게 살아간 그의 삶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식도락에 깃는 그 남자의 인생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남다른 DNA와 뜨거운 열정을 가진 왈츠의 대가. 하지만 세기의 음악이란 꼬리표를 버린, 한 인간으로서의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삶만 들여다본다면 조금 다른 그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하나가 식도락입니다.
여느 천재들이 다방면에서 예민한 감각과 섬세함을 타고나듯 그 역시 미식가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통상적인 미식가와는 달랐습니다. 가능한 소박한 곳에서 편안한 음식을 즐기되 최상의 장소에서는 또 최고의 미각을 추구했던 게 그만의 음식 철학이었습니다. 그는 파티의 특별한 메뉴들이 아닌, 소박하지만 정감 넘치고 서민적인 비엔나 음식들을 가장 좋아했는데, 달걀과자를 비롯해 내장 요리, 오그리오, 샤워크라우트, 굴라쉬, 시가와 와인 등이 그것입니다. 이런 한편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의 식재료, 엄청난 가격의 희귀한 음식, 오늘날 맛집에 비견되는 화제의 식당 메뉴와 같이 고정화된 식단을 배제하면서도 최고의 장소에서는 또 최상의 맛을 즐겼고 재정적인 문제가 닥치면 "아무것도 없다면 감자나 먹지"라고 태평하게 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왈츠의 아버지'라 불리던 유명한 음악가 아버지,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집안의 딸이었던 어머니, 그리고 음악가로 성공한 인생. 단편적인 사실만 보자면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날 때부터 성공이 예견된 삶을 산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식도락에서 엿볼 수 있는 여유로움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 전반은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대 요한 슈트라우스로 불리는 아버지는 그의 나이 열 살이 되던 해 이혼 후 재혼을 했고, 홀로 다섯 아이를 부양해야 했던 엄마는 빈 근교 음식점에서 일하느라 아이들을 돌볼 틈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고상한 음식이나 특별식을 만들어줄 여유도 없었던 것이죠. 레스토랑을 하던 외가를 두었음에도 서민적인 입맛이 각인된 이유는 바로 이러한 배경 때문입니다.
특별하지 않은, 그러나 특별한
10년 동안 러시아를 방문하며 러시아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 독일어음으로 표현한 단어장을 갖고 다녔는데 특이하게도 열다섯 번째 줄에 적혀 있던 단어는 그가 좋아한 '스위스 치즈'. 요리사와 다음날 식사 메뉴에 대해 나눈 편지도 남아 있으며, 당시 저녁 만찬을 위해 자신이 직접 메뉴를 짰는데 당시 빈에서 '슈트라우스의 저녁'이라 불리며 유명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만의 특별한 음식도 있었습니다. "검은 시가를 입에 물고 그것이 다 타면 연이어 새것으로 바꿔 물었다. 옆에는 와인 한 병이 있고 그 병 속의 와인은 점점 없어져 간다. 그럴수록 옆의 악보는 점점 더 채워진다." 폴카 174곡, 왈츠 159곡, 카드리유 70곡 등 오늘날까지 총 479곡을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밤낮 가리지 않고 일에 몰두했던 인물입니다.
와이셔츠의 커프스 위, 식탁보나 침대보, 스케치북이나 메뉴판 등 어디에나 악보를 그렸고 카드놀이를 할 때는 물론, 식사를 할 때, 연주회 중이거나 마차를 타고 이동하고 심지어 화장실에서까지 작곡했다고 합니다. 특히 그는 올빼미 형에 가까운 라이프스타일을 가져 새벽까지 작곡에 몰입하는 일이 많았는데, 이런 그의 특별한 창작 시간에 함께한 것이 바로 와인이엇고 와인의 향과 깊은 맛은 음악적 영감으로 이어져 다양한 왈츠를 탄생시키게 했습니다.
다양한 음식을 즐기면서도 그가 가장 선호했던 것은 빈 특유의 서민적인 식도락이었던 것처럼 그를 두고 지인들은 시골 음악가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당시 백만장자로 불릴 만큼 호화로운 집과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린 그였지만 이런 면모는 평생을 걸쳐서도 변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늘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며 평화로 가득 찬 일상을 사랑했기에 어려운 시절을 극복하고 최고의 자리에 섰던 게 아닐까요? 특별한 음식에 대한 식탐이 아닌 모든 음식의 진정한 맛을 즐길 줄 아는 제대로 된 식도락에 잘 어울리는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출처 : 웹진 Pioneer 145호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