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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 불꽃같은 휴머니스트로 살게 한 그의 에너지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3. 31. 10:24

빅토르 위고, 

불꽃같은 휴머니스트로 살게 한 그의 에너지




   

'빵' 한 조각 훔친 죄로 19년을 복역한 남자의 이야기. 프랑스 낭만주의의 거장 빅토릐 위고의 대표작,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은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뜻을 넘어 인간이 인간에게 베푸는 따뜻한 휴머니즘의 승리와 그 위대함을 그린 작품입니다.


19세기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 받는 이 작품에서 작가는 이야기합니다. 그 위대한 힘은 다름 아닌 따뜻한 '한 끼 식사'에서 비롯된다고 말이죠.


굶주리고 있는 어린 조카들을 지켜볼 수 없어 도둑질을 선택한 남자, 장발장. 5년 형기가 주어졌지만 홀로 남겨진 아이들이 걱정돼 탈옥을 시도하다 잡혀 긴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던 그는 결국 19년만에 탈옥에 성공하지만, 달라지지 않은 상황 앞에서 다시 절망하고 맙니다. 

혁명의 분위기가 팽배한 사회는 폭풍 전야였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여전히 없었으며 결국 굶주림과 분노로 가득차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운명은 19년 전과 달랐습니다.


갈 곳 없는 어느 밤 장발장은 한 사제관의 문을 두드리는데, 사제는 의심과 살기가 가득한 이 수상쩍기 그지없는 남자를 경계하기는 커녕 안으로 맞으며 귀한 은 식기에 따뜻한 음식을 담아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이 만남은 새로운 장발장을 탄생시킵니다. 그 동안 장발장 안에 깊이 천착해 있던 '빵'에서 비롯된 인간에 대한 증오가 사제가 베푼 빵, 즉 '따뜻한 한 끼 식사'를 통해 인간에 대한 믿음과 애정으로 변화하게 된 것입니다.




'빵'이어야 하는 이유





신과 인간, 선과 악, 성찰과 구원, 개인과 제도, 전쟁과 혁명 등 인간의 삶에 관한 모든 주제를 총 망라해 하나의 '세계'로 불리며 성장소설이자 구원소설, 사회소설이자 역사소설, 19세기 최고의 걸작이라 평가 받는 <레 미제라블>.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차치해 수백 년 시간을 거슬러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자아내게 하는 <레 미제라블>의 관전 포인트는 바로 이것입니다. '빵'하나로 운명의 굴곡을 겪는 남자의 모든 인생을 이야겠다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빵'을 통해 절망한 남자는 그 '빵'을 통해 다시 희망을 품었고 어려운 이들과 '빵'을 나누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어려운 시절일수록 의식주란 인간에게 가장 치열한 당면 과제죠. 그런데 왜 그 중 빵이었을까요? 쉴 곳 없는 거처, 헐벗은 옷이 문제가 되었어도 가능한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릇 빵이란 끼니의 대명사, 다름 아닌 인간의 본능을 가장 처절하게 자극하는 '식(食)'입니다. 작가는 가장 원초적인 인간 본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빵'을 통해 인간애가 사라진 현실을 고발하고, 다시 '빵'을 통해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는 희망을 이야기한 것은 아닐까요? 장발장, 그리고 음식이란 모티브를 통해 빅토르 위고, 그는 가장 진솔한 휴머니즘을 이야기한 셈입니다.


<레 미제라블>은 물론이고 <파리의 노트르담>을 비롯해 <웃는 남자>, <1000프랑의 보상> 등 빅토르 위고의 작품들을 보면 공통점을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절망적인 사오항에서도 희망과 인간애, 그리고 선의가 존재한다는 것이죠. 인간 중심이라는 것, 그리고 모두 치열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식탐, 왕성한 에너지가 되다




  

하루 4시간만 자며 집필에 전념했던 빅토르 위고. 그런 고된 작업에도 그는 당대 작가들 중 드물게 83세까지 장수했습니다. 특히 노년기의 왕서한 필력으로 유명한데, <레 미제라블> 역시 그의 나이 60세에 집필한 작품입니다. 또한 사후 그의 집에서는 수많은 그림들이 발견되기도 했는데, 생전 그는 차를 마시거나 친구들과 잡담할 때도 쉴 새 없이 끄적거리며 커피나 검댕, 초콜릿 부스러기, 우유 등으로 스케치를 남겼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 실력은 오늘날 작가들도 놀랄 정도라고 하니, 예술가로서의 천부적인 재능과 들끓었던 열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흐랑스는 물론 19세기 문학사에 획을 그은 위대한 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이며 사상가이고 투쟁가였으며 또 화가였고 70살이 넘는 나이에도 화려한 여성 편력을 자랑한 정력가였던 빅토르 위고는 그야말로 에너자이저에 비견해도 손색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과연 그 지치지 않는 힘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사실 긔는 평소 과도한 식탐으로 유명했던 인물입니다. 오노레 드 발자크, 알렉상드르 뒤마와 함께 당시 3대 미식가로 손꼽혔던 사람이 바로 위고입니다. 특히 그는 질보다 양을 추구한 대식가로 더 유명했는데, 그런 한편 "칠면조란 혼자 먹기엔 과하고 둘이 먹기엔 멋대가리 없고 싱거운 음식"이라고 할 정도로 까다로운 미식가로서의 면모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애석하게도 정확한 자료를 찾기는 어렵지만, 스스로 기발한 레시피를 개발하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귀양지(열혈 왕당파로 왕실과 친분을 자랑하다가도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는 격렬하게 정부를 비판에 귀양을 떠나기도 했습니다)에서는 미식에 관한 책을 다수 집필했다는 짧은 기록도 발견할 수 있으니 자신만의 미각을 즐긴 게 틀림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안위를 위해 값비싼 비용도 마다하지 않고 즐겼던 여느 식도락가들과 달리 "가난한 사람들에게 5만 프랑을 전하고 그들의 관 만드는 값으로 사용되며 교회 추도식은 거부한다. 또한 영혼으로부터 기도를 요구한다. 나는 신을 믿는다"고 유언장을 통해 마지막 삶마저도 오롯이 사람 중심이었던 빅토르 위고. 그래서일까요? 그에게 미식, 혹은 대식으로 즐겼다는 음식은 '맛' 이전에 치열하고 왕성한 삶을 지탱하게 한 에너지, 또 열정적인 작가, 사상가로서 그만의 세계와 신념을 꼿꼿하게 지켜낼 수 있게 한 힘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그래서 여타의 미식가나 대식가들과 달리 명성만 난무할 뿐 그에 관한 사료가 쉽사리 잡히지 않는 것일 터. 그래서 장발장의 '빵'처럼 빅토르 위고, 그 열정적인 작가이자 진정한 휴머니스트의 불꽃같은 삶은 단언컨대 그 위대한 식탐에서 비롯됐다고 확신해봅니다.




출처 : 웹진 Pioneer 144호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