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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마이 웨이, 품격으로 다스린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1. 6. 11:51

골프 마이 웨이, 품격으로 다스린다





프로골퍼 최경주. 그는 농부이자 어부이신 부친 밑에서 자라 중·고등학교 시절 역도를 했고, 열일곱 살 때 고등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돕고 남은 시간에 골프 책과 비디오를 보면서 골프에 대한 꿈을 키웠고, 그의 고향 완도의 유일한 골프연습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최경주는 그러한 헌신과 노력으로 미국프로골프 PGA  투어에서 처음으로 출전 카드를 딴 한국인이 되었습니다.




"난 행운을 믿지 않는다"



   

단번에 척척 승부의 세계에서 발돋움했을 것만 같은 그였지만, 그는 "운 좋게 단번에 뭔가를 이룬 적이 없다. 하다못해 공짜 경품 이벤트에 당첨된 적도 없다"라고 말합니다. 초등학교 때 축구부에 몸담은 적이 있는데 열심히 뛰었지만, 주전 선수가 되기는커녕 물주전자만 들고 다녔고, 중학교 시절 역도를 할 때에는 후배들에게 밀리는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골프만큼은 그가 흘린 땀의 무게를 정확하게 계산해 주었습니다. 열심히 한 만큼 얻어가는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 것입니다. 


"골프채에 손가락이 엉겨 붙을 정도로 열심히 하니까 완도 촌놈이 한국프로골프 상금 랭킹 1위에 올랐죠. 그리고 일본 대회에서 우승까지 할 수 있었어요." 그는 국내에서 프로골퍼로서 나름대로 잘나가던 때에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도전했습니다. 하루아침에 무명 선수가 되어 말 한마디 안 통하는 낯선 곳에 자신을 던질 수 있었던 건 그동안 골프를 통해 '땀 흘린 만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는 행운 대신 땀의 무게가 돌려주는 대가를 좇는 사람입니다. 더 많은 것을, 더 큰 것을 얻고 싶다면 그만큼의 땀을 흘려야 한다는 것을 그는 체득해왔습니다. "제가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마음대로 날아가 주지 않는 공과 어처구니없는 실수들에서 나온 것입니다. 어릴 적에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 물일을 꽤 많이 해봤어요. 그때 배운 것은 세상에 단번에 끝나는 일은 없다는 겁니다. 콩을 심든, 감자를 심든, 김 양식을 하든, 고기잡이를 하든 뭔가를 거두려면 먼저 준비하고 고생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기다리는 과정에서 잘못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농부나 어부가 포기하는 일은 없어요." 그에게 가장 어리석은 짓은 실패가 아니라 포기인 것입니다.




욕심을 내려 놓을 줄 아는 승부사 





"전 스트레스가 쌓여도 골프로 푸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럴 마음이 도저히 나지 않는 순간도 있었어요." 2012년 마스터즈 대회에 10년 연속 출전한 해이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준비했고, 은퇴 후 쉬고 있던 노련한 캐디인 앤디 프로저를 다시 부르고 온갖 상황에 대처하는 훈련을 실전처럼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경기가 시작되니 마음처럼 되지 않더라고요.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중해야 하는데 빨리 스코어를 줄여야 한다는 조급함만 차올랐습니다." 그는 차분하게 2004년 마스터즈에 출전한 지 2년 만에 3위에 올랐던 때를 되짚어 봤습니다. 그때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하며 오로지 홀에만 집중했다고 합니다. 


그 순간 그는 욕심을 내려놓지 못해서, 집착을 버리지 못해서, 골퍼로서 순수하지 못해서였음을 깨달았습니다. 다시 마음을 비운 채 팔과 클럽이 하나가 되어 자연스럽게 공을 쳐 냈습니다. 그의 골프 인생에 또 한 번의 멋진 샷이 터졌습니다. "골프는 몸과 마음이 가벼워야 이기는 운동입니다. 플레이의 목표는 점수가 아니라 오직 홀(hole)이어야 해요. 그 과정을 즐겨야만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거죠. 골프는 원래 그런 운동입니다." 열정, 열심, 의욕이 앞서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욕심을 채우기 위해 꾸며진 것일 때 우리는 종종 벽에 부딪치지 않는가요. 모자라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 넘칠 때 그것이 화를 부르기도 하니, 승부의 세계는 마음을 갈고 닦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낙천적인 생각과 웃음   



마스터즈는 그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에게도 특별한 대회입니다. 대회 전날 열리는 '파3 콘테스트(Part3 Contest)' 때문입니다. 파3 콘테스트는 정규 코스와는 별도로 9홀짜리 파3 코스에서 벌이는 승부에 대한 부담감 없이 즐길 수 있는 이벤트성 대회입니다. 이날만큼은 선수가 원하는 대로 누구든 인원 제한 없이 캐디로 초청할 수 있습니다. 주로 가족이나 애인을 초청하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회를 즐길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과 함께 그린 위를 걷는 날이 참 좋습니다. 첫해에는 첫째 호준이가 혼자 캐디를 맡았고, 그 후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둘째 신영이와 막내 강준이가 자라서 삼 남매가 함께 캐디를 맡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오거스타에서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리면 웃음이 돈다고 합니다. 평소 복잡한 것은 질색인 최경주 선수지만, 컷 탈락 후 원인분석만큼은 골똘히 합니다. 그도 사람인지라 생각에 빠지다 보면 안 좋은 기억이 한순간에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클럽을 바꿀 걸 그랬어' '물에 빠질 각오를 하고 페이드 샷(fade shot)을 쳤어야 했는데……' 따위의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아이들이 아빠 마음을 읽고 "아빠,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되잖아요! 우리 보드게임 해요!" 한답니다. 


"모든 대회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아이들은 저보다 더 긍정적이에요.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헤어나는 데 시간이 더 걸렸을지도 몰라요." 그는 그렇게 아내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아이들과 거실 바닥에 앉아 게임을 하며 재미있게 놉니다. 뒤로 벌러덩 누워서 배가 아프도록 웃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다시 낙천성이 회복됩니다. 또한 그에게는 기독교 신앙이 큰 울타리입니다. 골프를 치며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기에 자연을 만드신 신에게 항상 감사드리며 골프를 칩니다.




프로는 혼자가 아니다  



  

골프 경기는 하루에 4시간 넘게 진행됩니다. 코스의 대부분은 선수 혼자 묵묵히 보내야 합니다. 이때 캐디(caddie)가 선수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캐디는 단순히 골프백을 옮겨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승 상금의 10%를 나눠 줄 만큼 맡은 역할이 크지요." 그는 2004년 앤디 프로저를 영입했습니다. 앤디는 코스의 특성뿐만 아니라 그의 몸 상태와 기분을 재빨리 파악해서 상황에 맞게 클럽을 건네주고 농담으로 피로까지 풀어 주는 '찰떡 궁합의 필드 와이프'였습니다. 


그와 합작해서 만든 우승이 미국프로골프 투어 6승, 종합 16승입니다. "캐디뿐만이 아닙니다.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제 모든 것을 관리해주는 매니저, 골프 주치의, 경쟁자이면서 친구인 동료 선수들, 물심양면 후원해 주시는 분들, 그 모두의 배려로 제가 있을 수 있음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그는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지난 해 10월 13일 인천 송도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 코리아에서 진행된 ‘2014 최경주 재단 자선 골프대회 후원의 밤’에서 그는 단상에서 감사 인사를 하던 중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장학사업이 시작된 뒤 지난 5년 동안 300여 명의 꿈나무와 장학생들을 만났습니다. 힘든 순간에도 희망과 꿈을 잃지 않았던 아이들 덕에 우리 어른들도 힘을 얻었다"면서 눈시울을 붉힌 뒤 "아이들을 올바르게 양육할 책임을 느낍니다"라며 후원자들에게 진심 어린 마음을 전했습니다.


골프 꿈나무들이 미국 동계훈련을 오면 그는 아이들에게 ‘왜 골프를 치고 싶은지’에 대하여 글로 적어보게 합니다. 온전히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해서 결정한 것이 아니라 남에게 밀려서 골프를 하게 되면 마음속 깊이 즐길 수 없을 뿐더러, 골프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인내심을 갖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좀 늦으면 늦는 대로 제 힘으로 껍질을 깰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합니다. 칭찬과 격려로 마음을 열고 일단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아이들은 아무리 힘든 상황이 와도 꿋꿋이 이겨냅니다."  



어제는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 하지만 오늘은 다릅니다.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는 우리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어제와는 다른 상황, 다른 분위기, 다른 날씨에 적응하며 보다 나은 자신을 만들기 위해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온 최경주 선수. 그는 담담하게 말합니다. "나는 유명한 선수가 되기보다는 훌륭한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출처 : 사외보 아주좋은날 2014.011+12월호 


AJU SPECIAL INTERVIEW  나와 우리를 이어주는 아주 특별한 분과의 인터뷰입니다

글 :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