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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기차의 "칙칙폭폭"이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11. 26. 10:00

행복은 기차의 "칙칙폭폭"이다




행복은 대표적인 인류의 보편적 가치입니다. 이에 많은 사람은 행복을 삶의 궁극적 목표로 여기고, 열심히 직장도 다니고 돈을 법니다. 당장의 즐거움을 희생하고 고단함과 어려움도 감내하며 행복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하루, 한 달, 일 년을 열심히 달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열망과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당신은 행복합니까?"라는 질문은 낯설고 선뜻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만약 행복이 생각이나 믿음, 바람만으로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이라면, 행복해지는 법에 대한 조언을 듣고 책들로 가득 찬 대한민국은 행복 강국이 되었어야 합니다. 필자는 이 전반을 이해하기 위한 큰 실마리를 '행복을 대하는 근본적인 자세'에서 찾아보았습니다.




행복은 긍정적인 성과를 향한 원동력



 

우리는 흔히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특별한 조건이나 자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명문 대학, 좋은 학점, 연봉 많은 대기업, 넓은 아파트 등. 물론 이 모든 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더 풍성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며, 이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또한 개인과 공동체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최근 행복에 대한 많은 연구들은 행복이 성취를 통해 얻어지는 결과물이나 지표가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인 성과 자체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라고 설명합니다. 


일례로 흔히 우수한 근로자가 직무에 만족하고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연구 결과들은 근로자에게 행복이라는 정서적 경험이 역으로 우수한 수행을 산출하는 중요한 자원이 됨을 가리킴니다. 이처럼 건강이나 좋은 사회적 관계 같은 것들뿐 아니라 학업성적, 뛰어난 직무수행, 높은 소득과 같은 객관적 변인에서도 행복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행복이 한 개인의정서적 경험에 국한되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는 최근 국제사회가 행복을 국가 경쟁력의 원천으로 삼고, 현 정부 역시 '행복'을 국정기조로 내세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20만년 생존 경쟁을 통해 얻은 DNA



이처럼 행복이 단지 결과물이 아니라는 사실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가?라는 기존의 넙근 방식이 바뀌어야 함을 시사합니다. 또한 "인간은 대체 언제, 그리고 왜 행복감을 느끼는가?"라는 보다 본질적인 질문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 동안 행복에 대한 많은 연구나 실천에 대한 제언들은 대체로 행복을 노력을 토앻 달성하는 결과물로 간주하여 이데올로기나 제도, 규범과 같은 사회적 요소들의 역할에 관한 논의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행복감이라는 것을 경험하는 주체는 개인 자신이며, 따라서 '인간'이라느 ㄴ존재에 대한 이해 없이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심리학의 가장 큰 화두로 행복함(쾌감)을 포함한 인간의 마음은, 공작새의 꼬리나 기린의 목처럼 진화의 산물이라는 시각입니다. 쉽게 말해 모든 생명체가 존재하는 이유는 생존이괴,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가진 모든 특성도 생존을 위한 도구나 자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필자 역시 행복을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목표가 아닌, 생존과 번식을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행복, 더 추게적으로는 쾌감(Pleasure)의 기능은 무엇일까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은 모두 우리 조상들이 약 20만 년 동안 생존을 위해 투쟁했던 결과입니다. 우리의 뇌는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조상들이 물려준 일종의 '생존 지침서'이며, 이의 근간이 되는 것이 바로 '감정' 2종세트 (부정정서, 긍정정서)입니다. 생존에 위협이 되는 상황이나 자극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부정 정서와 달리, 즐거움이나 기쁨과 같은 긍정 정서들은 생존에 필요한 자원에 관심을 갖도록 이끕니다. 하루 종일 굶다가 밥을 먹을 때,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때 우리의 뇌가 "아~ 좋다!"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은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것들이니 열심히 해!"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행복은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한 장면이다



   

그렇다면 뇌는 언제 행복 신호를 내보낼까요? 기나긴 전화로 역사 속에서 호모사피엔스의 생사를 좌우했던 것은 크게 두 가지, 음식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식사를 꼬박꼬박 챙겨먹는 근본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고픈 배를 채울 때 느끼는 쾌감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생존 필수품, '사람' 역시 같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아파트에서 잠을 자고, 마트에서 음식을 사먹는 환경에서 살지 않았습니다. 포식자들과 추위, 배고픔과 같은 수많은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이나 집단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이 도움과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한 자들의 생존 확률은 꽤 낮았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성공적으로 유전자를 전해준 조상들은 집단에서 생활을 하며 친구와 연인을 항상 곁에 두고 살았던 이들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겠다는 거창한 포부 때문에 친구와 연인을 만든 것은 아닙니다. 친구와 어울리고 연인을 가까이 할 때의 "아~ 좋다!"는 느낌이 바로 이런 행동을 유도한 것입니다.


이처럼 행복(쾌감)의 본질은 중요한 생존 자원(음식, 사람)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추구하도록 이끄는 장치라는 데 있습니다. 지난 30년간의 행복 연구는 행복과 가장 관련 있는 변수가 사회적 관계의 빈도와 질에 있다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옥수수 알갱이가 불을 만나면 팝콘으로 터지듯 우리의 뇌는 사람 곁에 있을 때 행복 전구를 켜줍니다. 행복은 생존에 필요한 자우너(음식, 사람)에 다가설 때 발생하는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시작과 끝이 존재하는 유한한 시간 속에서 달리는 기차와도 같습니다. 행복을 갈구하면서도 예전보다 더 행복해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어쩌면 행복을 많은 노력을 통해 성취하는 것, 한참을 달려서 마침내 도착하는 종착역이라고 여기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행복은 기차가 달릴 때 나는 "칙칙폭폭"소리이며 순간순간을 충분히 음미하고 누리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 것. 모든 미사여구들을 떼어내면, 행복은 바로 이 한 장의 장면으로 압축됩니다.




출처 : 웹진 Pioneer 140호 (11월호)  | 글 서은국 교수(연세대학교 심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