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의 대가, 달리의 순수를 담은 빵
초현실주의의 대가, 달리의 순수를 담은 빵
자신을 흰 망토를 두른 왕이라 생각해 세발자전거를 탄 여자아이를 다리 아래로 굴려버리고, 다정한 노 의사의 코를 털이개로 후려쳤던 악동. 몸에 있는 점을 벌레라 여겨 면도칼로 떼어내고 염소 똥으로 직접 만든 향수를 뿌리고 다녔으며, 국제적인 초현실주의 전시회에 잠수복을 입고 등장, 세상을 뒤엎겠다며 40m 길이의 빵을 구웠던 초절정 괴짜. 전설적인 그의 기행은 세계적인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마저 고개를 젓게 했고, 21세기 괴짜들도 혀를 내두르게 했습니다. 천재 예술가 못지 않게 명성 높은 불세출의 '돌+아이'로 기억되는 그. 그가 살바도르 달리입니다.
천재이거나 미치광이이거나
10살 무렵에 그린 그림 <바느질하고 있는 안나 할머니>에서 그 나이에 그렸다고는 믿기 어려운 묘사력을 보이며 일찍이 세상에 천재임을 공표한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omingo Felipe).
이후 그에게는 20세기 초현실주의 운동을 시각 언어로 구체화시킨 대가이자 기존 미술에 최초로 무의식의 세계를 도입한 선구자, 하여 수많은 예술가들의 사고를 전환시킨 통로이며 근대와 현대의 이정표로 불렸고 또 독창적이고도 기괴함이 넘치는 아이디어맨이면서 스페인 황금기 회화의 정점인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작품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비롯해 밀레의 <만종>,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등 누구도 쉽게 도전하지 못한 천재 화가들의 최고 걸작을 절묘하게 패러디하여 패러디의 귀재란 닉네임이 뒤따릅니다. 프랑스의 스타 문인 미셸 브로도가 '르몽드'에 "달리를 빼놓고 20세기의 얼굴과 색깔을 상상해볼 수는 없다."고 말한 것처럼, 달리는 20세기 미술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천재 예술가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달리를 떠올릴 때 이보다 앞선 이미지는 커다랗게 뜬 눈에 번뜩이는 광기, 꼬리가 길게 올라간 콧수염과 기괴한 머리를 한 모습. 그 모습에 희대의 예술가에 대한 존경심과 동경은 자취를 감추로 괴짜, 광대, 쇼맨, 괴팍한 미치광이 등의 수식어가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삶을 산 그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달리는 이 모든 기행을 예술가로서의 충실한 이행이자 억누를 수 없는 천재성의 발현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달리의 지독한 가족사에 이런 기행의 또 다른 열쇠가 있습니다. 달리가 태어나기 전, 그의 형은 7살의 나이로 뇌막염에 걸려 죽게 되는데, 3년 후 달리가 태어나자 부모는 그를 형의 환생으로 여겨 죽은 형과 똑같은 이름을 붙이고 그에게서 형의 모습을 찾으며 늘 비교했습니다. 이는 달리에게 정신적인 상처를 안겼고 죄책감과 강박증, 편집증, 부모에 대한 반발의식, 정신분열의 증상인 이중성 혹은 다중성의 특징을 갖게 했습니다. 결국 "나는 결코 죽은 형은 아니며 살아있는 동생이라는 것을 항시 증명하고 싶었다."고 말한 것처럼 달리는 형이 아닌 온전한 자신으로 관심받길 원했고, 그 열망을 온갖 기상천외한 일탈로 드러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또한 운명인 건지, 이런 기행들은 넘치는 상상력을 원료로 하는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에게 오히려 날개가 되었습니다.
<기억의 지속 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
황량한 사막에 널려 있는 흐물흐물한 시계, 불에 타 흘러내리는 기린, 수화기를 들었을 때 바닷가재의 성기가 말하는 사람의 입에 맞춰지도록 설계한 바닷가재 전화기 등 우리 주변의 평범한 물건을 변형하고 기괴하게 표현한 그의 작품들은 누군가의 친절한 설명이나 해석 없이는 이해하기 어렵고, 심지어 과연 이것이 천재의 작품인가 라는 의문도 서슴지 않고 품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의 작품에서 알 수 있듯 예술가 달리와 인간 달리의 삶은 궤적을 같이 합니다. 평범치 않은 그의 삶이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된 것이죠. 늘 형의 분신으로 강요 받았기에 달리는 어쩌면 현실이 실제가 아닌 끔찍한 환상, 악몽이길 바랐을지도 모릅니다. 달리가 일찍부터 매료된 것이 꿈과 환상의 세계였던 것도 이 때문은 아닐까요?
실제 그의 그림들은 대부분 꿈 속 세계, 즉 무의식의 세계를 그만의 상상력으로 광적이거나 난해하게 묘사한 것입니다. 이는 21살에 우연히 프로이트의 책을 읽고 프로이트에 흠뻑 매료된 것을 계기로 더욱 심화한 것인데, 달리는 이성이 아닌 욕망으로 지배되는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현실에서 충족되지 못한 다양한 욕망의 형태가 모호해진다는 프로이트의 의견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작품 속에 흐물흐물하고 부드럽게 변형된 그만의 오브제를 탄생시켰습니다. 달리에게 '미술계의 프로이트'란 별명이 생겨난 이유이기도 합니다.
달리의 무의식을 맛보다
<삶은 강낭콩이 있는 부드러운 구성-내란의 예감 Soft Construction with Boiled Beans, Premonition of Civil War, 1936>
모호하고 때로 엽기적이기까지 한 달리의 작품. 하지만 의외의 재미도 숨어 있습니다. 수많은 음식 모티브들이 그것으로 가재나 콩, 성게, 석류, 굴, 달걀, 고깃덩이, 소시지 등 종류도 다양합니다. <양의 갈비를 어깨에 걸치고 있는 갈라>에는 양갈비가, <삶은 강낭콩이 있는 부드러운 구성-내라느이 예감>에는 콩이, <포르트리가의 마돈나>에는 성게가 등장합니다.
이런 음식들은 달리만의 독특한 메타포로 작용해 초현실적인 작품의 분위기를 더욱 배가시킵니다. 저녁 식사로 먹은 까망베르 치즈의 녹아 내리는 형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흐물흐물한 시계 이미지를 완성한 <기억의 지속>, 노릇노릇 구워진 베이컨을 보고 완성한 <구운 베이컨과 부드러운 자화상>과 같은 대작들은 달리에게 음식이 그저 단순한 오브제가 아닌 중요한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음을 증명합니다.
음식 중에서도 달리가 가장 많이 그린 것은 빵이었습니다. <프르트리가의 마돈나>, <원자핵의 십자가>, <회상의 여자 흉상> 등 작품에 빵을 등장시키는 것은 기본, 15미터 길이의 빵을 구워 공공장소에 전시했고 '달리 극장 겸 박물관'의 붉은 팥죽색 외벽에 빵 덩이를 장식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밀가루 반죽을 이용해 먹는 가구를 조각하기도 했으며, 한때 파리협회에서는 혁명적인 빵의 결사까지 조직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외 빵일까요? 어릴 적 달리의 꿈은 요리사였습니다. 하지만 풍족한 집안에서 태어나 모든 것이 허락된 그에게 유일하게 금지된 것이 바로 자유로운 부엌 출입이었습니다. 여자들로 북적이고 활기로 가득 찬 부엌은 늘 동경의 장소였고, 금지된 공간에 대한 열망은 호시탐탐 침입할 기외흘 노리게 했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달리의 빵이 그때의 동경과 억압된 욕망, 어린 시절과 여성, 어머니에 대한 회상을 상징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달리에게 빵이란 그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달리의 고향인 카탈루냐 음식은 부수적인 요리가 곁들여지지 않아 빵의 비중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 컸는데, 이런 태생적인 이유가 바로 빵에 집착해 깊은 의미를 부여하게 한 것은 아닐까요? 작업이 한창일 때면 달리는 빵과 물만 먹으며 지냈다고 하니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서 그를 지탱한 힘이자 철학, 또 그가 추구했던 순수한 예술의 본질의 바로 빵에 투영된 게 아닌가 짐작합니다.
평소 "나는 천재이다", "나는 세상의 배꼽이다", "내가 피카소보다 100배 낫다"고 떠들어댔던 오만한 천재 달리. 하지만 그 오만함 또한 마냥 미워할 수 없으니, 그는 천재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회화를 비롯해 조각, 가구, 향수, 광고,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그의 재능이 미치지 않은 분야는 없었습니다. 몽테뉴의 <수상록>, 단테의 <신곡>,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등 유명작가들의 책에 삽화를 그렸으며 소설과발레 대본을 쓰고 영화 제작에도 열정을 기울였습니다. 의외의 작품도 있는데, 막대사탕의 대명사 츄파춥스의 로고가 그것입니다. 현재까지 가장 인지도 높은 로고 중 하나가 바로 달리의 작품이었던 것입니다.
"키리코도, 에른스트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달리만큼 상상력이 풍부한, 기발한 자는 없다."는 피카소의 확신처럼, 미치광이와 천재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즐겼지만, 예술가로서 그는 누구도 상상하지못한 세상을 보여줬고, 그 세상을 통해 절망과 불안, 모순 등 우리가 안고 있는 숱한 욕망을 가감없이 일깨워줬습니다. 어쩌면 달리 스스로도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왜곡된 현실 속 자아가 아닌, 무의식 너머에 잠자고 있는 본연 자신을 찾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렇기에 달리가 가장 애착을 보였던 작품 속 빵,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그 음식은 괴상한 예술가, 죽은 형을 대신한 제2의 달리가 아닌 넘치게 상상하고 거침없이 표현한 순수 예술가, 진짜 달리에 대한 그의 안타까운 열망을 진솔하게 표현한 오브제가 아니었을까요.
출처 : 웹진 Pioneer 138호(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