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쉬고 노는 것이 경쟁력
잘 쉬고 노는 것이 경쟁력
가보스전자 최선수 부장(가명)은 올해 말 임원 승진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는 그동안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대부분 성공시키며 윗 분들의 신뢰를 듬뿍 받았고, 프로젝트에 참여한 직원들과 사이도 좋아 다면평가에서 늘 톱을 달렸습니다. 하지만 최근 주변에서 “최선수가 변했다”는 소리가 나옵니다. 부하 직원의 작은 실수에도 호통을 치는 날이 많아졌고,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는 약속까지 놓치는 치매 증세까지 나타났습니다.
불면증과 식욕부진으로 살이 빠져 인상도 차갑고 날카로워졌습니다. 걱정 끝에 병원을 찾은 그가 받아 든 병명은 ‘소진 증후군 (Burnout Syndroe)’. 직장인들이 일에 지쳐 만사가 귀찮아졌을 때 “배터리가 나갔다”고 말하는데, 바로 그런 증상을 뜻하는 전문 용어입니다. 정신과에서는 ‘감성 에너지가 완전히 방전돼 버릴 때 생기는 뇌의 심각한 피로 현상’을 뜻합니다.
일만 하면 바보 된다’는 과학적 진실
소진 증후군은 학창시절 배운 ‘일만 하면 바보 된다(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는 영어 속담이 의학적으로는 100% 진실이라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사람의 뇌는 직장에서 말하는 ‘팀워크’ 체제로 일하는 15개가량의 신경망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일할 때 작동하는 팀(신경망), 쉴 때 작동하는 팀(신경망)이 따로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과업(task)을 정하고, 밀어붙이고, 멀티 태스킹하는 역할을 하는 ‘조정 신경망(Control Network 또는 Task-Positive Network로 불림)’이 엄청나게 발달해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최선수 부장처럼 조정 신경망만 너무 쓰다 보면 소진 증후군에 걸리기 쉽습니다. 반면 바쁜 현대인들의 일상 때문에 일하지 않을 때 스위치가 켜지는 ‘디폴트 네트워크(Default Network 또는 Task-Negative Network)’는 무시돼 왔습니다. 우리 뇌에서 디폴트 네트워크가 잘 발달해야 창조와 공감 능력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화두 ‘창조 경제’와 직결되는 뇌 신경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디폴트 네트워크는 잘 놀고 잘 쉬어야 발달합니다. 직장인들이 가장 바람직한 상사 유형으로 꼽는 ‘똑똑하면서도 게으른 상사’는 결국 이 디폴트 네트워크가 발달해 창조와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대한민국 ‘창조 경제’ 힘든 까닭을 꼽아보자면, 우리나라 직장인 가운데 85%가 소진 증후군을 경험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한국인들은 뇌가 제대로 쉴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 국민 가운데 가장 오래 일하고, 가장 잠을 덜 자는 편입니다.
2012년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092시간으로 OECD 국가 평균 1,705시간보다 훨씬 깁니다. 가장 적게 일한다는 독일 국민(1,317시간)에 비해 일 년에 석 달 가량을 더 일하는 셈입니다. 반면 한국인의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7시간 49분으로 가장 짧았습니다. 7시간대 수면시간을 가진 국가는 우리와 일본(7시간 50분)뿐이었습니다. 잠을 줄여가면서까지 일하는데 노동 생산성은 OECD 전체 평균의 66%, 미국의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아직 한국 대기업들이 ‘밀어붙이기만 하면 장사가 되는’ 시절의 패러다임에서 못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싸고 질 좋은 물건을 많이 만들면 성공했던 과거 스토리는 이제 더 이상 우리 얘기가 아닙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세계 경제는 공급 과잉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싸고 질 좋은 대량생산 물건은 중국이 만들고, 선진국 대기업들은 창조적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비즈니스로 옮겨갔습니다(애플이 본사에선 연구개발만 하고, 생산은 중국에 맡기는 게 대표적 사례). 최근 세계적인 MBA 스쿨들이 업무 효율성을 얘기할 때 빼놓지 않는 주제가 바로 ‘잘 쉬는 것’이 된 이유도 창조적 아이디어의 중요성 때문입니다.
경영 전략에 연결되는 ‘휴(休)테크’
필자가 미국 MBA 스쿨에서 공부할 때 인턴 자리를 구하는 나이 어린 동료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회사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구글이었습니다. MBA 인턴 월급이 웬만한 한국 대기업만큼 많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구글의 혁신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다는 게 큰 이유로 꼽혔습니다. 하지만 인턴십을 마치고 돌아온 친구들은 구글에 대해 좋게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외부에 구글 성공 비법으로 알려진 ‘일하는 시간의 20%를 자신만의 연구에 활용하라’는 방침에 대한 불만이 많아서 의아했습니다. 말이 좋아 ‘자신만의 연구’이지 통상 하는 일에 더해지는 하나의 프로젝트처럼 변질해 버려 직원들의 스트레스가 엄청나다고 느꼈다는 것입니다. 화장실에 앉아서도 프로젝트를 생각해야 할 만큼 압박감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또 사내에서 먹고 자고 할 수 있는 구글의 엄청난 사내 복지 프로그램도 결국 ‘워커홀릭’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혹평도 많았습니다.
사실 구글 성장을 이끌던 ‘스타’ 임직원들은 이미 2000년대 후반부터 구글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내에서 키운 ‘자생적’ 창조 엔진이 멈추자 구글은 인수합병(M&A)이라는 새로운 성장 엔진을 달았습니다. 창조적 아이디어를 키운 회사를 거금을 들여 사들이는 것입니다. 로봇과 음악 스트리밍에 이어 스마트홈 기업까지, 막대한 현금의 힘 덕분에 구글의 M&A는 전방위적입니다. 내부에서 창의성을 키우지 못하자, 대신 밖에서 사들이는 ‘돈복 터진’ 구글만의 경영 전략인 셈입니다. 구글 만큼 현금을 쌓아놓지 못한 기업들의 선택지는 한 가지입니다. 직원들을 잘 쉬고 잘 놀게 해서 창의적 인재로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출처 : 사외보 아주좋은날 2014.09+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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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