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자꾸 도전하는 걸까?
인간은 '왜' 자꾸 도전하는 걸까?
최초로 세계 일주에 성공한 페르디난도 마젤란. 그의 엄청난 행적은 빛나는 역사로 기록됐지만, 3년 동안의 항해는 그야말로 눈물겨운 여정이었습니다. 항해 지원을 받지 못해 에스파냐로 망명한 탓에 조국에선 역적, 에스파냐에선 첩자 취급을 받았고 살인적인 더위와 추위, 인육을 먹는 원주민들의 습격, 각종 질병이 그의 도전 의지를 호시탐탐 꺾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필리핀에서 죽음을 맞기 전까지 그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꿈을 이뤘습니다. 사실 이런 불굴의 도전담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숱하게 많습니다. 최초로 남극 탐험에 성공한 아문센부터 인생의 황혼기, 칠순의 나이에 960차례나 도전해 운전면허증을 따낸 차사순 할머니의 이야기까지. '대단한 사람들'이란 말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보통은 편안함과 안전함을 추구하기 마련인데 이들은 왜 자꾸 무모하고, 위험하고 또 실패할 줄 알면서도 도전하는 걸까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에베레스트(8,848m)에 앤드류 어빈과 함께 인류 최초로 도전한 조지 말로리는 등정을 앞두고 한 강연에서 질문을 받습니다. "당신은 왜 에베레스트 산에 오릅니까?" 그의 답은 이랬습니다.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오릅니다."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그의 말은 세계의 모든 알피니스트들뿐 아니라 도전하는 모든 사람에게 불후의 명언으로 남아 수많은 탐험가들이 왜 목숨을 걸고 자꾸 도전하는지 명쾌하게 답변해줍니다. 특히 말로리는 당시 변변한 장비도 없이 모직과 실크 옷, 개버딘 코트만을 걸치고 등반을 시작했습니다. 결국, 정상을 불과 250m 남겨 놓은 지점에서 그는 갑자기 사라졌고 1999년 8,160m 높이의 남벽에서 75년 만에 두 팔을 정상으로 향한 채 발견됐습니다. 누군가는 미쳤다고밖에 할 수 없는 시도, 시작조차 잘못 채워진 단추 같지만 말로리는 개의치 않았고 결국 한 편의 도전 신화를 남겼습니다.
프랑스의 스파이더맨이라 불리는 암벽 등반가 알랭 로베르는 10살 때부터 암벽 등반을 시작해 수많은 산을 정복했지만 1982년 추락 사고로 뇌 손상을 입게 됩니다. 하지만 1년 후 기적적으로 일어났고, 이후 맨손으로 세계의 고층 빌딩들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부터 금문교, 시어스타우, 아부다비 국립은행, 타이베이 101 등 세계 유수의 고층 건물들이 그에게 정복되어갔습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단감 서늘한 도전을 시작한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더러 미쳤다고? 꿈에 도전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미친 사람이다."
차사순 할머니 역시 도전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하다가 포기하면 결국 아무것도 안 한 게 되니까. 그래서 그냥 끝까지 다녔다"고 답했습니다.
"도전한다, 고로 존재한다."
누군가 상을 주는 것도, 돈을 주는 것도 또 명예를 주는 것도 아닌데 도전하는 이들. 심리학자들은 우리 본성에 깃든 '자극추구 행동'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람에게는 보통 배고픔, 수면과 같은 생명을 유지하고 활동하기 위한 생리적 동기와 권력, 관계 맺기 등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사회적 동기가 있고 이 외에 제3의 동기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본유적 동기, 즉 자극추구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자극추구 행동은 생리적 동기나 사회적 동기로는 설명이 안 되는 행동으로 우리가 아무런 자극이 없는 상태를 견디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극을 추구하려 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온몸이 녹초가 되는데도 굳이 높은 산에 오르고, 심장이 튀어 나갈 것처럼 고통스러운데도 롤러코스터를 타며 짜릿함을 만끽하는 것. 모두 자극추구 행동 덕입니다.
캐나다 맥길대학교의 심리학과 헤브(Donald Olding Hebb) 교수가 실험을 했습니다. 남자 대학생 22명을 대상으로 일당 20달러를 주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누워 있으라고 지시한 것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반투명 고글을, 귀에는 일정한 소리를 들려주어 자극을 최대한 줄였습니다. 참가자들이 하는 일이라곤 화장실과 밥 먹는 것을 빼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는 것이니 식은 죽 먹기라고 판단한 지원자들이 앞다워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지루해하다 불쾌함을 느끼기 시작했고 결국 셋째 날을 넘기지 못하고 포기했습니다. 실험 뒤에도 얼마 동안 환각을 경험하거나 사물을 집중해 보지 못하는 후유증을 겪었다고 합니다.
자극이 너무 커도 문제지만, 자극이 없는 삶도 문제인 것이죠. 실험을 통해 헤브 교수는 사람은 자극을 추구하는 존재이고, 적절한 수준의 자극을 받을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다만, 이 적절한 수준이 문제인데 사람마다 그 정도가 달라서 누군가는 회전목마로도 충분하지만, 누군가는 롤러코스터 정도는 타줘야 스릴을 느낄 수 있으니 우리가 무모하고 위험하고, 그래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숱한 탐험가들의 도전은 미친 짓이 아니라 우리보다 자극 수준이 한참이나 하이 레벨인 이들에겐 생존 확인이라는 치열한 시도인 셈입니다.
"도전하라,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것처럼"
링컨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까지 언론에 불린 별명은 '실패할 운명을 가진 사람', '실패를 밥 먹듯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30년 동안 8번이나 선거에서 낙선했으니 누굴 원망하랴. 하지만 그 역시 실패에 대처하는 자세는 남달랐습니다. "나는 선거에서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음식점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배가 터질 정도로 많이 먹었다. 그 다음 이발소로 가서 머리를 곱게 다듬고 기름도 듬뿍 발랐다. 아무도 나를 실패한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곧바로 다시 시작했으니까." 어이없다 못해 뻔뻔함까지 느껴지는 이 위인들을 보십시오. 하지만 실패가 두려워 도전을 접고, 접고 또 접었던 우리의 자화상을 돌아보면 결코 이들을 놀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인류의 역사도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Herodotus)는 "이집트는 나일 강의 선물"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가 매일 일어나는 나일 강의 범람 덕분에 태양력과 기하학, 건축술, 천문학이 발달했다는 것입니다. 자연의 도전에 대한 인간의 대응이 결국 인류의 역사와 문명을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던 것입니다. 잉카나 마야,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반면 중국을 중심으로 한 극동, 인도, 이집트 문명이 아직까지 건재한 것 역시 자연재해나 외세의 침입 같은 끊임 없는 시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렇게 보니 실패와 역경 없는 도전이란 말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물론 전제는 있습니다. 실패, 역경에 대처하는 자세입니다. 인생이 정직하다고 믿는 사람은 실패를 하더라도 '된다'는 생각으로 계속 도전하는 반면, 인생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지레 포기해버린다고 합니다. 현실은 '생각대로' 되는 법. 누군가는 실패에 대해 드디어 그동안 해왔던 행로를 바꿀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말을 할 것입니다. 이런 쿨한 마인드까진 어렵다면, 에디슨, 링컨처럼 한 번 뻔뻔해져 보기라도 하죠.
작은 도전에서 큰 도전으로, 무한한 도전
섬나라란 이유로 태생부터 육지에 대해 로망을 품었던 일본은 그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도전했지만, 군국주의란 그릇된 결과를 낳았습니다. <지금 멈춰야 할 것들(Give Up To Get On)>의 공동 저자인 심리치료사 앨런 B. 번스타인 역시 도전이 헛된 희망, 지나친 성공을 강요해 인생을 쓸모 없이 허비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불행하게도 삶은 노력한다고 누구에게나 공평한 성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며, 불굴의 의지는 분명 삶에 필요한 에너지이지만 때에 따라선 쓸모 없는 노력을 멈추는 편이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입니다.
이때 필요한 또 다른 도전이 바로 '멈춤'입니다. 어쩌면 이 멈춤 또한 실패의 다른 이름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미 멀리 왔거나, 너무 많은 것을 투자했다면 쉽게 멈추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도전은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해 큰 도전으로 한 단계 한 단계 성취해가야 하고, 그 도전 간에는 반드시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20년 후 당신은 했던 일보다 하지 않았던 일로 인해 더 실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밧줄을 풀고 돛을 올려라. 안전한 항구를 떠나 항해하라. 당신의 돛에 무역풍을 가득 담아라. 탐험하라. 꿈꾸라. 발견하라."고 말했습니다. 때로 멈춤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분명 도전은 필요합니다. 무모한 도전이 아니라 목표를 향해 올곧게 가는 무한한 도전 말입니다.
출처 : 웹진 Pioneer 137호(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