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을 짓다 -스티븐 송 Steven Phillip Song
비움을 짓다 -스티븐 송 Steven Phillip Song
건축계의 싱크탱크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야 하는 홍대 거리를 멈춰 서 유심히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들떠서 술렁이는 사람들, 트렌디한 카페와 바, 관습을 거부하는 예술적 분위기 등이 뒤섞인 홍대, 그는 그곳의 공기를 읽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스티븐 송, 한국식 이름은 송현달입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건축사무소 SSDL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올해 초 호텔 서교 신축 프로젝트로 한국을 방문해 새로 지어질 호텔의 디자인 콘셉트를 구상했습니다. 그는 직접 운영하는 건축사무소 SSDL 외 호텔프로젝트 팀 INNO HOSPITALITY를 이끌고 있습니다.
<캐퍼비안에 위치한 St. Kitts and Nevis섬의 리조트 호텔 입구 모습. 화산섬의 물결치며 솟아오르는 지형, 그리고 하늘과 바다를 구분할수 없이 펼쳐진 수평선 등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재해석했습니다.>
"호텔 프로젝트는 전문 두뇌집단이에요.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사람이 섞여 있죠. 인도인이면서 영국에 거주하는 이도 있고, 유대인이면서 토론토에 사는 이도 있어요. 호텔 서교 신축 프로젝트 또한 아주 호텔 & 리조트 팀원과 INNO HOSPITALITY팀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6개월 연구 작업을 거치고, 두 달간 교대로 한국을 오가며 아이디어를 종합하고 개발의 방향을 정리해 나갔죠."
그는 이전에도 뉴욕의 젊은 건축가들과 비움(VIUM)이라는 그룹을 결성하여 건축이론과 디자인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해 온 것으로 잘 알려졌습니다. ‘VIUM’이 한국어의 ‘비움’에 해당하는 의미냐고 묻자, 그는 답했습니다.
"네. 우선 미국인이 들었을 때 큰 의미를 전달하지 않는 단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도 우리가 지향하는 건축의 방향을 담는 이름을 정하고 싶었죠. 건축가는 자신의 에고를 건축물에 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 공간에 살 사람들이 그곳을 자신의 삶으로 채울 수 있게 그릇을 만들어 줘야 하는 거죠."
거리의 정서를 닮은 공간
그렇다면, 그는 신축될 호텔 서교를 어떤 그릇으로 만들고자 구상했을까요? 그가 본 홍대는 다양한 시간과 공간이 오버랩된 매력적인 공간이다. 1970년대의 재래시장 풍경 속 낡고 오래된 건물, 한국적 아방가르드 스타일을 추구하는 하이브리드 문화, 인디문화의 아지트, 다양한 문화와 취향을 반영한 상점들이 홍대 거리에는 뒤섞여 있습니다.
"호텔 서교는 이 주변에서 제일 오래된 호텔이었어요. 전통을 갖고 있으면서 빠른 변화의 흐름에 맞춰 호텔로서 새롭게 요구되는 역할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전통성을 기초로 한 호텔 서교는 앞으로 열린 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될 예정입니다. 그는 홍대 거리의 원동력을 상업적이면서 동시에 매우 개인적 취향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문화로 봅니다. 신축될 호텔 서교는 홍대의 독특한 정서를 이끌어 갈 것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여가 활동의 하나로 ‘호텔 놀이’라는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호텔은 비즈니스 혹은 숙박 차원에서 잠시 머무는 역할만 하지 않습니다. 호텔은 문화적 환경이 잘 갖추어진 세컨드 하우스이기도 한 셈입니다.
"예전에 지어진 좋은 호텔들은 대부분 표준화되어 있었어요. 세계 어디를 가도 비슷했죠. 그런데 20년 전부터 부티크 브랜드가 등장하면서 최근 호텔들은 지역의 특성에 맞게 특화되어 있죠."
그는 요즘 집을 활용해 숙박 서비스를 제공하는 AirBnB(Bed and Breakfast)를 여행객들이 선호하는 것도 호텔을 자기 집처럼 이용하려는 욕망을 반영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낯선 곳에 가서 그곳의 독특한 공기에 취해 그곳 사람처럼 살아보는 것. 그렇게 다양한 자극과 문화를 섭취하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고 있는 것이죠.
"건물은 그 주변의 배경과도 조화를 이뤄야 해요. 그 자신이 있는 장소와 시대의 가치에 대해서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야 하는 거죠."
홍대 거리를 닮은 호텔 서교의 신축이 기대되는 것은 그곳이 홍대의 문화적 맥락과 닿아 있는 공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홍대의 새 이정표가 될 호텔 서교의 완공이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
도제식 수업
스티븐 송은 한국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닌 뒤 국제기구에 근무하는 부친을 따라 필리핀으로 건너가 고등학교 과정을 수학했습니다. 그 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있는 카네기 멜론 대학과 펜실베이니아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습니다.
"필리핀에 있을 때였어요. 사는 게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 곳 바로 옆에 어울리지 않게 웅장한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죠. 주변 환경을 배려하지 않은 개발이 폭력적으로 느껴졌는데, 이후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며 건축가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실마리가 됐어요."
그는 과거 건축가들은 건물을 짓기 위해 그곳에서 살며 흙까지 먹었다며, 고민이 담기지 않는 건축물에 대해 비판했습니다. 주변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화려하게 지어 헐고 또 새로 짓는 태도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승을 찾아 나섰습니다. 평소 존경하던 유수의 건축계 대선배 몇 분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건축가의 존재 이유에 대해 그 답을 찾고 싶습니다.' 그의 이런 질문을 반기며 답을 보내 준 이가 바로 건축가 로버트 벤투리와 데니스 스콧 브라운 부부였습니다.
그들은 현대건축과 그 이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축가로 많은 건축가들에게 사고의 자유로움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로버트 벤투리는 형식적인 건물이 아니라 상징적인 건물, 유행에 따른 건물이 아니라 예술적인 건물, 답답한 건물이 아니라 융통성 있는 건물, 관념적인 건물이 아니라 실용적인 건물, 영웅적인 건물이 아니라 전통적인 건물, 어스레하게 빛나는 건물이 아니라 디지털적인 건물, 조각된 건물이 아니라 활력이 넘치는 건물, 연극 무대가 아니라 배경 같은 건물을 좋은 건물이라 했습니다.
건축가로서 스티븐 송의 패기와 절실함을 느낀 로버트 벤투리와 데니스 스콧 브라운은 스티븐 송을 문하생으로 두었습니다. 그는 휴학을 하고 약 1년 간 스승의 집에서 먹고 자고 일하며 도제식 수업을 받으며, 생각의 흔적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벤투리와 스콧 브라운의 건축적 접근법을 기반으로 도시 변화의 과정과 변하는 프로젝트와 변하는 맥락의 관계를 연구하며, 동시대 건축가들과 함께 새로운 건축에 대한 토론을 전개해 나갔죠.
도시의 의사
<1,000여실 규모의 최고급 리조트로서 스파, 3개의 수영장, 3개의 레스토랑, 카지노 등이 들어서는 St. Kitts and Nevis에서 현재 가장 큰 규모의 개발 프로젝트이고, 침체된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으로 기대받고 있습니다.>
알랭드 보통은 『행복의 건축』에서 "집은 물리적일 뿐 아니라 심리적인 성소가 되었다"며 "신을 섬기지 않더라도 가정적인 건축 하나가 사원이나 교회와 다를 바 없이 우리의 진정한 자아를 기억하는 일을 도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스티븐 송은 알랭드 보통의 말을 언급하며 모든 건물은 사람들의 삶을 더 나은 쪽으로 이끌어 줘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건축가는 타인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기에 자기 스스로 도덕성과 사회적 책임감을 집요하게 파고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에게 건축가란 도시의 의사입니다. 건축물은 그 도시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입니다. 안전하고 아늑한 본래 기능을 다하면서도 그 도시의 흐름과 맞닿아 있는 공간을 지향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는 어떤 도시의 건축물을 구상할 때면 그 도시의 여행자가 되어 배회하며 그 도시를 느낍니다. 그리고 설계 도면을 펼쳐 놓고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채울 수 있게 도와줘야 할까를 고민합니다.
"제가 이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까가 아니라, 이곳에 살 사람이 자신의 삶을 채울 수 있게 어떻게 비울까를 생각합니다."
그가 이야기하는 비움은 고요하고 정체된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다양한 삶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명력 넘치는 공간인 것입니다.
"건축물이 예술적 조각품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외관을 자랑해도 그 공간에 머무는 사람이 그 공간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죽어 있는 공간이나 다름없죠."
그리하여 그는 비움을 짓고 있습니다.
출처 : 사외보 아주좋은날 2014.07+08월호
AJU SPECIAL INTERVIEW 나와 우리를 이어 주는 아주 특별한 분과의 인터뷰입니다
글 :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