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헤밍웨이, 열정을 다한 내 삶을 위해 건배!
어니스트 헤밍웨이, 열정을 다한 내 삶을 위해 건배!
바람기는 다분해도 미워할 수 없는 마성의 매력과 뛰어난 능력을 가진 세계의 스파이, 제임스 본드. 덕분에 그에게는 늘 아름다운 여성과의 로맨스가 따라다닙니다. 그 로맨스의 시작은 술. 한국을 배경으로 한 스무 번째 시리즈 <007 어나더데이>에서는 '모히토'가 그 임무를 맡았습니다. 아바나의 한 바에서 본드는 매력적인 여인과 모히토를 즐기고 어김없이 낭만적인 밤을 보냅니다. 영화 <마이애미 바이스>에서 콜린 파렐과 공리의 사랑을 매개한 것 역시 모히토였습니다. 모히토와 로맨스, 과연 우연일까요? 사실 모히토에는 '마법에 걸리다'라는 뜻이 담겨 있는데, 그 마법이 통한 게 틀림없습니다. 미국의 대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역시 이 강력한 마법에 단단히 걸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헤밍웨이와 칵테일
다이키리, 쿠바 리브레와 함께 쿠바 3대 칵테일로 손꼽히는 모히토는 림을 베이스로 라임주스와 소다수, 거칠게 찧은 민트 잎을 듬뿍 넣어 만드는 칵테일입니다. 소다수의 톡 쏘는 청량함에 민트 잎의 알싸한 향이 어우러져 깔끔하고 상큼한 맛이 일품이죠. 카리브 해의 정취를 그대로 옮긴 듯 투명한 얼음조각과 짙은 녹색의 민트 잎이 조화를 이룬 외모 역시 보는 것만으로도 단박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매력 만점 요소입니다. 뱃사람들이 즐겨 마셨다는 이유로 '해적의 술', 혹은 '마법', '마법에 걸리다' 등의 뜻을 가진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의 언어 모조(Mojo)에서 비롯됐다고 해서 붙여진 '마법의 술'이란 이 애칭은 이 칵테일에 이국적인 신비로움까지 더합니다.
그런데 모히토에는 이 재미있는 애칭들을 능가하는 세계적인 별명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헤밍웨이 칵테일'이 그것입니다. 헤밍웨이가 생전 몹시 즐겨서 얻게 된 이름으로, 헤밍웨이는 1940년 쿠바에 이주한 후 매일 낮에는 낚시를 즐기고 밤에는 단골 선술집에서 모히토를 마셨다고 합니다.
사실 헤밍웨이는 술에 관한 한 타고난 주당, 그야말로 엄청난 술고래였습니다. 좋아하는 와인인 '샤토 마고'의 이름을 손녀딸에게 붙였을 정도죠. 이런 전설적인 애주가의 기다란 'favorite alcohol' 리스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던 술이 바로 모히토였습니다.
하드보일드한 문체답게 드라이한 종류의 술을 좋아했던 헤밍웨이는 모히토 역시 부드럽고 달콤한 요즘 스타일과 달리 소다수는 적게 넣고 럼을 많이 사용해 독하게 즐겼습니다.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아바나의 해변에 앉아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마시는 모히토 한 잔은 헤밍웨이에게 작은 행복이었다고 합니다. 모히토를 마시며 휴식과 사색을 즐기는 한편, 그는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얻기도 했습니다. <노인과 바다>를 집필할 당시 매일 마신 것도 모히토였습니다. 한때는 하루 10잔씩 마시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모히토에 대한 넘치는 애정은 "내 삶은 라 보데기타(La Bodeguita Del Medio)의 모히토와 엘 플로리디타(El Floridita)의 다이키리(럼 베이스의 대표적인 쿠바 칵테일)에 존재한다"는 낙서로 남겨져 오늘날 그의 단골집들을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만들었습니다.
쿠바 전통 칵테일에서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칵테일, 또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칵테일이 된 데에는 모히토의 싱그러운 매력에 바로 이런 '헤밍웨이'란 마법까지 더해진 게 틀림없습니다.
보헤미안 랩소디 in 쿠바
84일째 아무것도 잡지 못한 늙은 어부 산티아고. 다들 운이 다했다고 말했지만, 그는 곳곳이 먼바다로 나갔고 결국 나흘 밤낮 사투를 벌이며 그의 조각배보다도 훨씬 큰 청새치를 낚는 데 성공합니다. 스스로 "평생을 바쳐 쓴 글"이라고 말한 헤밍웨이의 마지막 작품이자 그에게 퓰리처상과 노벨상의 영광을 안겨준 걸작,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가 쿠바에 머물 당시 듣게 된 한 늙은 어부의 실화를 모티브로 삼았습니다. <노인과 바다>뿐만이 아닙니다. 1960년 쿠바 혁명정부가 미국으로 추방하기 전까지 헤밍웨이는 20여 년 동안 수도 아바나에 머물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제5열>,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와 같은 명작들을 집필했습니다. 쿠바는 헤밍웨이에게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었고, 헤밍웨이 역시 스스로 '입양 쿠바인'이라 말하며 깊은 애정을 표했습니다.
전후의 우울한 그림자를 헤치고 혜성처럼 등장한 헤밍웨이는 당시 20세기 미국 문단의 거장, 사실주의의 대가로 살아있는 전설이었습니다. 특히 책상에 앉아 글만 쓰는 기존 작가들과 달리 1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 2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전쟁영웅, 바다낚시와 복싱, 사냥, 투우를 즐기는 강한 남성, 또 네 명의 아내를 둔 마초적인 캐릭터는 헤밍웨이를 강하고 건강한 미국 남성의 표본으로 만들었고, 그가 애용한 '코로나3' 타자기나 아베크롬비앤드피치 패션, 파커51 만년필을 명품의 반열에 등극시키는 등 스타일 아이콘으로 거듭나게 했습니다.
<말린스에서 낚기 여행을 즐긴 후의 헤밍웨이 (출처 : 위키피디아)>
그런데 이처럼 다분히 미국적인 작가 헤밍웨이가 선택한 나라가 왜 미국이 아니라 쿠바였을까요? 친구들에 따르면 헤밍웨이는 마음이 여리고 늘 외로움과 두려움에 가득 찬 사람이었습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마초적이고 야성미 넘치는 모습은 진짜 헤밍웨이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절친 피츠제럴드의 아내는 헤밍웨이를 "가슴에 털 난 계집애"라고 놀리기까지 했다 합니다. 그가 위험천만한 모험과 남성적인 스포츠에 집착했던 것도 바로 이런 나약함을 감추고 극복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사실 사회적인 성공을 강요해 원만하지 않았던 어머니와의 관계(심지어 어린 헤밍웨이에게 누나와 쌍둥이처럼 옷을 입혔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를 비롯해 두 누이마저 자살로 생을 마감한 비극적인 가족사, 여기에 끝내 그 역시 자살을 택했다는 사실은 이런 일설에 진실의 무게를 더하긴 합니다.
모히토, 헤밍웨이에게 마법을
<엘 플로리디타 한편에서 아내 마리 헤밍웨이, 영화배우 스펜서 트레이시와 함께 있는 헤밍웨이
(출처 : 위키피디아)>
하지만 내면이 심약했든 아니든 이것이 헤밍웨이의 전부는 아닙니다. 골칫덩어리 트러블메이커로 유명했지만 매일 정해진 분량의 글을 쓰고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하는 등 규칙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 자연을 사랑하고 아바나의 가난한 어부들에게조차 예의 바르고 친절했던 휴머니스트, 그가 헤밍웨이입니다. 또한 그는 누구보다 열정적인 작가였습니다. 온통 사냥과 낚시에 미쳐있는 듯 보였지만 사냥 가는 길이나 고깃배 안에서도 늘 글을 썼고 책을 읽었습니다. 말년 건강이 악화돼 스톡홀름에서 있었던 노벨상 수상 연설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작품 활동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실은 그의 사후에 알려졌고, 그 결과물은 엄청난 양의 책들로 출판되었습니다.
언젠가 남겼던 편지에서 "작가로 살고 싶었다. 전쟁에 참전했던 남자도 싸움꾼이나 사진작가, 경마광도 술꾼도 아닌 철저하게 작가로 살고 싶었고, 그렇게 평가받고 싶었다"는 말을 남긴 헤밍웨이. 상어와 사투를 벌이며 "사람은 파멸 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고 되뇐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에서 헤밍웨이를 보게 되는 것은 무리일까요?
헤밍웨이 역시 절망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꿈꾸고 누릴 수 있었던 곳이 바로 쿠바였습니다. 현실을 극복해 그가 꿈꾼 강한 인간상, 철저하게 작가이고 싶던 소망에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게 해준 그만의 낙원. 때문에 모히토, 그 아바나의 정취를 그대로 닮은 칵테일은 헤밍웨이가 평생 사랑하고 죽는 날까지 그리워한 또 다른 쿠바였으며, 작가로서 그의 열정을 복돋워 준 힘이었고 유약한 내면에 맞서서 고단한 현실을 위로해준 청량한 마법 같았습니다.
출처 : 웹진 Pioneer 136호(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