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 대신 '효율', 일하는 방식 바꾸기 열풍
'열심' 대신 '효율', 일하는 방식 바꾸기 열풍
국내 대기업 가운데 요즘 '문제아' 두 곳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포스코와 KT가 꼽힙니다. 두 곳 다 사업은 문어발식으로 확장됐는데 제대로 경영이 안 돼 적자 사업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방안경영'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권오준 포스코 신임회장과 황창규 KT 신임회장은 마치 짜 맞춘 듯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들뿐만이 아닙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은 요즘 유행처럼 '일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왜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데 집착할까요? 그리고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지난 번에 이어 다시 한 번 '일하는 방식'을 되돌아보도록 해요.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하는데…….
한국인들이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OECD) 가운데 가장 오랜 시간 일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우리나라 근로자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은 2,092시간(임금근로자 기준)으로, OECD 평균을 420시간이나 초과했습니다. 가장 적은 시간을 일하는 네덜란드 근로자는 연간 1,334 시간을 일했습니다. 하루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네덜란드 근로자가 우리보다 1년에 석 달가량을 덜 일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일은 많이 해도 생산성은 별로입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은 GDP를 총 근로시간으로 나눠 산출한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23.7달러(2012년 기준)로 OECD 34개국 중 터키와 함께 28위에 그쳤습니다.
이는 일하는 방식이 후진적이기 때문이라고 평가됩니다. 고용노동부의 '2014년 일하는 방식과 문화에 대한 인식조사 보고서'를 보면 임금 근로자 10명 가운데 6명이 회사 업무 효율성이 '보통 또는 낮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이유로는 불합리한 업무 분장 또는 과다한 업무량(응답자의 63.4%가 지적), 상사의 갑작스러운 업무 지시(59.3%), 복잡한 보고 및 문서 수발 절차(27.0%) 등이 지적됐습니다. 상식과는 달리 근무 시간 중 잡담 및 딴짓(24.7%)이라는 응답률은 대체로 낮았습니다.
시스템과 리더십 그리고 소통
여기 00물산 월요일 회의시간 풍경을 그려볼까 합니다. 팀장인 김 이사를 포함해 총 7명의 팀원이 모여 있습니다.
김 이사 : 그래, 오늘 회의에선 좋은 아이디어 좀 내 봐.
이 대리 : 제 생각엔 마케팅 플랜 B를 마련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나머지 팀원들 침묵).
김 이사 : 그래, 이 대리가 아이디어 냈으니까 이 대리가 책임지고 잘 해봐.
이 대리 : 저 혼자선 힘들 것 같은데요(나머지 팀원들 침묵).
김 이사 : 그래? 그럼 박 과장이랑 같이 하는 게 어떻겠나?
대부분의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겪었을 일입니다. 앞에서 인용한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와도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김 이사는 일을 효율적으로 분담하지도 못하고 (이 대리 상사인 박 과장을 팀원으로 붙였으니 말이죠), 시간 순서에 맞춰 계획적으로 시키지도 못하며 ("이 대리가 책임지고 잘 해봐"),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못하고 있습니다(아이디어를 낸 사람에게 일을 맡기면 다음부터는 누가 아이디어를 낼까요?!).
필자가 미국 MBA 유학시절,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가장 먼저 제출하는 파워포인트 과제는 프로젝트 범위에 대한 정의와 팀원 간 업무 분장 그리고 타임 테이블이었습니다. 이걸 만드는 데만 꼬박 일주일이 걸릴 정도로 팀원 간 열띤 토론을 했었습니다.
일을 정의하고 체계적으로 시키는 시스템, 그리고 효율적인 지시를 하는 리더, 팀 구성원 간의 허심탄회한 소통, 이 세 가지가 조직이 효율적으로 일할 때 필요한 핵심요소인 것입니다.
포스코와 KT의 일하는 방식 개조
최근 포스코가 새로운 일하는 방식을 발표했습니다. 2014년 6월 7월부터는 조직 내 상급자가 하급자를 평가하는 기존의 방식 대신 프로젝트 위주로 성과를 평가하는 '성과 평가 시스템'을 도입했던 것입니다.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등급별로 확인하고, 각 프로젝트에서 나온 결과물을 관리하는 '프로젝트 관리 시스템'도 가동할 예정입니다.
조직을 관장하지 않는 전문 임원 제도를 둬, 이 전문 임원들이 부서 간 협업이 필요한 통합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부장급들인 PCP(POSCO Certified Professional)들이 단독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형식입니다. 프로젝트 제안은 모든 임직원이 주제를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포스코의 일하는 방식 개조를 들여다보면 시스템, 리더, 소통의 세 요소를 골고루 감안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야 일하는 방식을 강조하는 포스코와 달리 KT는 오래전부터 '스마트 워크'를 도입하며 일하는 방식을 바꾸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곳저곳에서 직원들의 직무 기강 해이가 목격됐습니다. KT ENS 사태가 대표적입니다. 일하는 시스템을 바꾸려 했지만 가장 중요한 리더 역량 강화에 실패한 게 주원인으로 보입니다.
조직론을 가르친 한 교수는 시스템, 리더, 소통 가운데 리더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리더의 역할은 팀원에게 업무의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고 활발한 소통이 되도록 하는 일이며 스스로 팀 전체에 대한 최종 책임을 지는 일이다. 권한은 없이 책임만 주거나, 대화하지 않고 일방적 지시만 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리더는 최악이다."
생산성 높여 '저녁이 있는 삶'을 누려야
MBA 시절 한 자동차 회사 프로젝트를 하면서 겪었던 일입니다. 우리의 업무 파트너였던 데이브가 오후 4시 반이 되자 "유치원 끝난 아이들 데리러 가야 한다"며 자리를 뜬 것입니다. 그런데 곁에 앉아있던 동료들 모두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하는 것입니다. 데이브는 옆방에 있는 그의 상사에게 오늘 일을 어디까지 끝냈다고 얘기한 뒤 뒤도 안 돌아보고 퇴근했습니다. 철저하게 성과 중심의 평가를 하기 때문에 근무 시간이 중요하지 않은 미국 기업의 단면이었습니다.
포스코 소식을 들으며 데이브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포스코 직원들이 새 일하는 방식을 통해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지 아니면 프로젝트에 찌들어 점점 지쳐갈지 궁금해집니다. 부디 훌륭한 리더십 덕택에 전자의 결과가 나오길 기대해봅니다.
출처 : 웹진 Pioneer 135호(6월호) 글 | 조시영(매일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