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보는 심리학,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주었을까?
재미로 보는 심리학,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주었을까?
눈처럼 하얀 피부, 앵두처럼 붉은 입술, 흑단 열매처럼 검은 머리의 아름다운 공주, 백설공주. 그런데 얼굴만 예쁜 게 아니라 마음까지 고우니 그녀는 모두의 사랑과 부러움을 받는 천하의 '엄친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새엄마가 생기며 백설공주는 목숨에 위협을 받게 됩니다. 구사일생으로 가까스로 살아나지만 일곱 난쟁이의 오두막집에서도 다시 위기가 찾아오니 원인은 바로 그녀였습니다. 난쟁이들의 신신당부에도 불구하고 세 번이나 낯선 이에게 문을 열어주며 위험을 자초한 것이죠. 흉흉한 세상, 요즘 아이들도 다 아는 낯선 사람에게 문 열어주지 않기를 백설공주는 몰랐을까요? 한 번도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정녕 이 여인은 왜 자꾸 문을 열어준 것일까요?
한 번 속지 두 번 속나
난쟁이들이 금광으로 일하러 떠나자 백설공주는 혼자 남게 되고 이때 누군가 문을 두드립니다. 바로 방물장수 할머니. 할머니는 온갖 물건을 보여주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코르셋이었습니다.
백설공주가 예쁜 코르셋을 마음에 쏙 들어 하자 방물장수 할머니는 입어보라고 권합니다. 돈 없는 백설공주는 몇 번을 사양하지만 결국 설득에 넘어가고, 백설공주가 코르셋을 입는 찰라 기회를 잡은 할머니는 힘차게 코르셋을 조입니다. 그리고 끝. 하지만 백설공주의 이 첫 번째 위기는 퇴근한 난쟁이들이 코르셋 끈을 풀며 간단히 해결됩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 할머니, 즉 백설공주의 새엄마는 자신의 계획이 실패함을 알고 플랜 B를 실행합니다. 같은 방법으로 백설공주의 머리에 독 빗을 꽂은 것이죠. 이 역시 해결사는 난쟁이들이었습니다. 두 번이나 위기를 겪으며 난쟁이들은 이제 백설공주가 나 홀로 집에 있는 순간이 영 걱정스럽습니다. 그래도 출근은 해야 하니 백설공주에게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할 밖에요. 그런데 웬걸, 백설공주는 세 번째에도 사과를 파는 할머니로 변장한 새엄마에게 문을 열어주고 결국 독 사과를 먹습니다. 난쟁이들이 손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야 만 것이죠.
흔히 한 번 속지 두 번 속느냐고들 마합니다. 하지만 백설공주를 보니 세 번이라고 못 속을까 싶네요. 철없고 순진한 이 여인이 세상 물정 모른다는 것은 그렇다 치고 혹시 바보는 아닐까요? 낭비벽이나 사치 성향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남의 말에 심하게 흔들리는 팔랑귀를 타고난 건 아닐까 의심스럽습니다. 그녀의 아빠도 못된 새엄마에게 속아 아내로 맞지 않았던가요. 부전여전, 집안 내력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백설공주의 이 행동은 그녀의 어린 시절과 자란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헝겊 엄마가 좋아
미국의 심리학자 해리 할로우가 한 실험을 했습니다. 실험 이름은 헝겊 엄마, 철사 엄마'. 새끼 원숭이에게 가슴에 우유병을 단 철사로 만든 엄마와 먹을 것은 없지만 부드러운 감촉을 지닌 헝겊으로 만든 엄마를 함께 제공하는 것이죠. 새끼 원숭이는 누굴 선택했을까요? 흔히 아기들이 엄마를 무조건적으로 좋아하는 이유로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 보편 논리로 보자면 결과는 철사 엄마일 것입니다.
하지만 새끼 원숭이들은 헝겊 엄마를 선택했습니다. 우유를 먹을 때를 빼고는 항상 헝겊 엄마 옆에 머물렀고 그나마 우유를 먹을 때도 철사 엄마의 우유병에 입만 댄 채 다리는 헝겊 엄마에게 걸쳐두었다고 합니다. 큰 소리, 위협을 가했을 때도 도망을 친 것은 헝겊 엄마 곁이었습니다.
왜 우유도 주지 않는 헝겊이었을까요? 그 이유를 찾으며 할로우 교수는 사람(원숭이)이 임신하면 수정란이 생기고 그 수정란이 성장할 때 외배엽이 신경계와 피부가 된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피부는 밖으로 돌출된 뇌와 유사하다는 것이죠. 피부를 제2의 뇌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특히 피부에는 C-촉각 신경섬유라는 게 있는데, 이것은 엄마가 아이를 달래거나 쓰다듬는 동작과 비슷한 물리적 환경에서 크게 활성화됩니다. 다시 말해 피부를 접촉하게 되면 뇌의 신상 하부에서 행복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이 분비되고 안정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기분이 울컥하거나 슬플 때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손, 따뜻하게 안아주던 포옹이 얼마나 위로가 되고 마음을 가라앉혀주는지 우리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피부를 접촉하는 것을 단순한 접촉이 아니라 '접촉 위안(contact comfort)'이라고 부릅니다. 새끼 원숭이들의 선택도 바로 이 접촉위안 때문인 것입니다.
문이라는 것은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경계이자 보호와 단절의 의미, 한편 소통의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낯선 이에게 거침없이 문을 열어주던 백설공주는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순진한 처녀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싶어하는 외로운 여인일 확률도 있습니다.
아기일 때 엄마를 잃고, 형제자매도 없이 외동딸로 자란 백설공주는 궁중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듬뿍 사랑을 받았다지만, 물고 빨고 부대끼는 가족의 사랑은 분명 부족했을 것입니다. 열다섯 되던 해, 새엄마가 생기지만 호시탐탐 백설공주를 노리는 이 엄마는 오히려 없느니만 못합니다. 우여곡절, 난쟁이란 7명의 새 가족이 생겨도 상황은 그대로였습니다. 아침 일찍 일터에 가 밤에 돌아오니 백설공주는 또다시 혼자가 된 것이죠. 그리고 사람이 그리운 그때 누군가 찾아옵니다. 마침 의심 따위 죄가 되는 호호 할머니인 것이죠. 백설공주, 그녀는 바보가 아니라 접촉위안이 필요했던 외로운 아가씨였던 것입니다.
소통의 위안, 접촉
실제로 접촉은 사람의 성장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미국 국립보건원 신경심리학자 제임스 프리스콧은 세계 4백 개 문화권을 조사한 결과 어릴 때 아이를 잘 만져주고 키스나 포옹 같은 연인의 애정표현에 개방적인 사회일수록 폭력이 적다고 밝혔습니다. 초기 부모와의 관계가 사회적 관계 형성의 기초가 된다는 것 역시 입증된 사실입니다. 쓱쓱 문질러만 줘도 아픈 배가 낫던 엄마 손은 약손, 미숙아로 태어난 신생아를 엄마 품에 안아 키우는 캥거루 케어의 놀라운 효과도 같은 맥락입니다.
포옹(Hug)의 어원은 고대 노르웨이어 'Hugga'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 뜻은 편안하게 하다, 위안을 주다. 한자로도 안을 '포(抱)'에 낄 '옹(擁)'자를 써서 사람, 또는 사람끼리 품에 껴안는다는 뜻과 함께 '남을 아량으로 너그럽게 품어줌'이라는 의미를 지녀 포옹이 단순한 신체행위를 넘어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침을 알 수 있죠.
2004년 호주 시드니에 살던 '후안 만'이라는 청년의 이야기는 포옹의 놀라운 테라피 효과를 깨닫게 합니다. 할머니를 여의고 할아버지마저 눈이 멀자 절망 속에 청년은 '우리 포옹할까요(Free Hug)?'라는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섭니다. 그리고 낯 모르는 이들의 따뜻한 위로를 통해 다시 용기와 희망을 얻습니다. 프리허그 운동의 시작인 것이죠.
살다 보면 절망에 빠져 괴로워할 때 백 마디 충고보다 때론 꼭 잡아주는 손이 더 위로가 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친근감의 표현보다 머리를 쓰다듬는 행동이 더 거리감을 좁혀주기도 합니다. 물질문명이 우세하고 휴머니즘이 사라져 섬처럼 단절된 디지털 시대에도 다르지 않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상처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치유해 주는 심리적 장난감으로 탄생해 부드러운 촉감만으로 승부한 '테디베어'가 성공하고 러닝화 최초로 발바닥 부위의 촉각 정보를 도입, 1982년 처음 출시된 '뉴발란스 990'이 흥행한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최근에는 최첨단 디지털 기기들에 '터치', '촉감' 기능을 접목하는 기술이 수없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물론, 우리 문명에도 여전히 '접촉', 그 따뜻한 온기가 필요하다는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출처 : 웹진 Pioneer 135호(6월호)